▲4월 4일 ‘글래스톤베리 인천’에서는 크라잉넛의 공연이 있었다. 공연의 한 장면.
김영숙
동인천이라 불리는 신포동은 한때 인천 음악의 1번지였다. 근처에 고등학교도 많았고 음악학원도 많았다. 당시는 '록커'가 연예인이었다. 앨범도 없는 록밴드의 공연도 만석인 경우가 많았다.
"남구 관교동에 밴드들의 지하연습실이 50여개 됐어요. 서울에 있는 유명한 밴드들도 관교동에 연습실을 만들고 인천에서 공연하는 걸 당연하게 여겼죠. 헤비메탈의 메카, 한국의 엘에이(LA)라고 불렸어요."1990년대 초반까지 그랬다. 그러나 잘 기획된 아이돌 가수들이 출현하고 나서 '오빠부대'의 이동이 이뤄졌고, 음악을 하던 밴드들은 홍대로 몰렸다.
"인천 출신 밴드들도 '인천 밴드'라고 말하지 않아요. 예전에는 음악 하는 사람들에게 인천은 자랑이었는데 지금은 인천이라는 이미지에 갇히게 될까, 걱정하는 거죠. 그 심정 이해해요. 90년대 초까지만 해도 밴드 음악의 저변이 넓었지만 지금은 대형 페스티벌 위주로 움직이잖아요. 대형 행사가 잘 되려면 클럽이 잘 돼야합니다."클럽은 풀뿌리 문화이고, 거기서 스타가 나온다는 것이다. 이것이 클럽의 순기능이라고 이씨는 강조했다.
2012년 이씨는 또 한 번의 결단을 한다. 있는 돈을 다 끌어들이고 대출까지 해 클럽 내부공사를 시작했다.
"주방을 부숴 없애고 무대를 만들었어요. 인천지역에 현역 뮤지션들이 서는 무대가 없었어요. 앨범을 내고 자기 음악을 하는 밴드들이 공연하는 클럽을 만들고 싶었습니다."이씨는 공사를 하면서, 장사를 하면서도 뮤지션들을 직접 만나거나 회사를 찾아다녔다. 인디문화와 관련한 평론가, 기자, 협회 등 다니지 않은 곳이 없을 정도였다. 그 노력으로 2012년 무대를 만들고 지금까지 이곳을 다녀간 밴드가 250여개다. 그들이 공연 전후의 내용을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소개해줘 자연스레 입소문이 나기 시작했다. 그러나 장사는 소홀히 해 여전히 경영난을 이기지는 못하는 형편이다.
"저도 어떻게 버티고 있는지 모르겠어요. 잊지 않고 찾아와주시는 분들, 비틀거릴 때마다 채찍질해주는 동료 뮤지션들이 있어, 버텼던 거 같아요. 참 감사하죠"지난 3월, '글래스톤베리 인천'에서는 '메이드 인 인천'이라는 타이틀로 공연했다. 3년간 꾸준히 공연하면서 인천에서 활동하는 뮤지션들의 데이터를 축적했다. 조만간 2회 공연을 준비하고 있다는 이씨는 인천시민들에게 소개하고 싶은 밴드들이 생겼다고 했다. 인천의 이미지에 갇히는 걸 거부하던 인천 밴드들도 이제는 이곳에서 공연하고 싶어 한다. 황무지를 개간한 목장주와 그의 노력을 알아본 시민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거룩하고 싶지 않다, 더 재밌게 놀자지난 4월 4일, '글래스톤베리 인천' 앞에는 비가 오는 날씨에도 불구하고 크라잉넛의 공연을 보기 위해 2시간이나 서서 기다리는 관객들로 긴 줄이 생겼다. 올 4주년 공연을 위해 이름만 들어도 알 수 있는 밴드들을 섭외했거나 진행 중이다.
"사명감에 시작한 일이었는데 이제는 점점 더 재밌는 걸 찾아요. 공연자와 관객이 어우러져 재밌게 놀 수 있는 아이디어를 계속 떠올려보는 거죠. 사실 저희들의 의미 있는 시도를 관에서 제대로 평가하고 지원해줘야 하는데, 아직 그런 단계에는 이르지 못했어요. 하지만 도와달라고 하고 싶지는 않아요. 우리가 더 재밌게 놀면 사람들이 모이겠죠. 그러면 그들이 우리한테 먼저 찾아오겠죠? 거룩하고 싶지는 않아요. 재밌었으면 좋겠습니다."구상하고 있는 재밌는 아이디어를 소개해달라는 제안에, 이씨는 "1박2일 공연을 준비하고 있어요. 15명 정도를 모집해 공연이 끝나고 뮤지션·스태프들과 뒤풀이를 하고 숙소에서 함께 취침하고 다음날 자유공원에 모여 산책하는 거죠. 점심은 차이나타운에서 짬뽕으로 해결하고 헤어지는 일정이에요. 올 가을에 처음 시도할 예정입니다"라고 했다.
반짝이는 아이디어와 열정으로 다시 음악의 도시 인천의 명성을 찾을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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