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 80센티미터, 길이 200센티미터 2층 침대 위에서 12시간 있기.
이명주
(오후)
12:05 두 번째 점심. 역시 고구마 두 개. 물 몇 모금. 십 분이 채 안 돼 식사를 끝내고 '배는 부른데 할 일이 없다'는 생각을 했다.
1:01 읽고 있는 책에 나오는 동물들 그림을 그렸다. 덕분에 1시간이 금세 갔다. 이것도 반칙에 속하지만 어쩌지 못한다. 5시간 57분 남았다.
2:00 또 잠들었다 깼다. '그곳'에 사는 이들은 악몽이면 좋을 참혹한 현실을 짧은 잠에서 깰 때마다 자각하겠지…….
2:20 두피가 지끈거린다. 잠시 이 체험의 취지를 잊고 지금의 답답함과 지겨움에 집중했다. 씻지 못한 얼굴은 번들거리고 손에선 아침, 점심 연이어 먹은 고구마 냄새가 난다.
3:00 침대 주변 허공에 보이지 않는 벽이 있는 것 같다. 이만 체험을 멈추고 싶다! "뜨아아아아아!" 두 번째 비명. 4시간 남았다. 8시간이 지났음을 위안 삼으며.
3:47 방금 놀라운 생각을 했다. 이 지루한 체험이 끝나면 '치맥'이 먹고 싶다는. 습관이란 대단히 무서운 것임을 체감한다.
4:00 몸이 찌뿌드드해서 앉은 채로 체조를 했다. 두피 통증이 계속돼 머리를 벽에 대고 돌렸다. 양팔을 아래위로 들었다 올렸다 하기도 했다. 같은 행동을 반복하다 보니 이와 흡사한 모습을 동물원에서 봤음이 기억난다.
5:15 주변이 쌀쌀해졌다. 담요를 덮고 누웠다. 어머니로부터의 전화. "지금은 통화할 수 없다" 말씀드리고 끊었다. 짧은 순간이지만 상당한 해방감이 든다. 머릿속이 먹먹하고 뒷목이 뻐근하다. 씻고 싶다.
5:47 심각한 심신에 대한 위협이나 고통 없이 다만 단조롭고 밀폐된 공간에 머무는 것이 이렇게 힘들 줄이야. 그래도 10시간이 지난 게 신기하다... 새삼 회의가 든다. 이런 시도가 누군가 '그곳'에 대해, 정확히는 그곳에 사는 '그들'에 대해 관심 갖는 계기를 만들 수 있을까? 아니 나부터 실질적인 변화를 위해 한 걸음 더 다가갈 수 있을까?
6:04 온종일 물과 고구마만 먹은 탓인지 배 안에서 개 우는 소리가 연거푸 난다.
7:00 종.료.
(내가 침대에서 내려와 가장 먼저 한 일은 모든 문을 활짝 열고 바깥 공기를 쐬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