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4년 11월 12일(현지시간) 중국을 국빈 방문한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오른쪽)이 베이징 인민대회당의 공식 환영식장에서 시진핑 중 국가주석의 안내를 받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2012년 중국 시진핑 주석이 '중국의 꿈'에 대해 연설했다. 2021년 전면적 소강사회 건설, 2049년 현대화된 사회주의 국가 건설이라는 목표를 처음 제시한 연설이다. 이때 중국은 이미 세계의 패권을 되찾기 위해 작정을 했다고 볼 수 있다. 1848년 아편 전쟁 이후 중국은 전쟁에서 입은 내상을 치유하기 위해 동굴 속으로 들어갔다. 이제 '동굴'에서 나오겠다고 세상에 천명한 것이다. 이 연설의 기본 목표는 중국 사회 내부에서 심화되는 민심이반의 극복이었다.
동굴에서 나오는 중국
1978년 개혁·개방 정책 시행 이후 중국은 큰 성과를 거두었다. 기존의 학문 틀로 해석하기 어려울 정도다. 따라서 세상은 긴장할 수밖에 없다. 지난 200여 년간 동굴에서 내상을 치유한 중국이 어떤 모습으로 다시 세상으로 나올지도 궁금하다. 이를 가늠해볼 수 있는 일이 최근 발생했다.
다행히(?)도 중국의 전략은 과거 천하를 통일하려던 시기와 별로 다르지 않다. '근교원공'으로 요약할 수 있는 책략이다. 21세기판 중국의 근교원공 책략은 '일대일로(一帶一路) 건설'과 'AIIB(아시아 기초 시설 투자 은행, Asia Infrastructure Investment Bank) 설립'이다. 초기이기는 하지만 이 책략은 상당한 힘을 발휘하고 있다.
'일대일로'는 주지하다시피 현재 중국의 최신 대외 정책의 핵심 사업이다. '일대'는 중국에서 중앙아시아를 거쳐 유럽으로 이어지는 육상 운송로다. '일로'는 중국에서 서남아시아와 중동 그리고 아프리카를 거쳐 유럽을 연결하는 해상 운송로를 의미한다. 이는 중국의 '서진 전략'의 구체적인 실행 방안이다. 중국 서쪽으로 거대한 국가·지역간 생활 네트워크를 만들겠다는 것이다. 그래서 '일대'는 육상 실크로드, '일로'는 해상 실크로드라고도 부른다.
AIIB는 아시아 지역의 도로, 철도, 발전소 등 사회 기초 시설 투자에 필요한 자금을 조달하는 것이 주목적이다. 일대일로는 사업이며, AIIB는 이를 뒷받침할 국제기구인 것이다. 즉, 일대일로는 목적이고, AIIB는 수단이라고 할 수 있다.
미국의 아시아회귀정책- 중국의 '일대일로' 'AIIB' 이렇게 표면적으로는 하나의 사업과 국제기구에 불과할 수 있다. 하지만 일대일로와 AIIB이지만 배경과 의도를 살펴보면 중국의 꿈을 실현하기 위한 매우 주도면밀한 구상 중 하나다. 일대일로는 중국 서진전략의 구체적인 사업이다. 이는 패러다임의 변화를 의미한다. 중국은 개혁·개방 정책 실시 이후 수출주도 및 외향형 발전 전략을 채택해왔다. 이는 스스로가 세계의 공장이 되는 것을 의미한다.
그 결과, 중국은 비약적인 경제 성장을 거듭했고, 목표대로 세계의 공장이 되었다. 또 급속한 경제성장이 부담스러워 속도 조절을 할 정도로 경제력을 확보했다. 지정학적으로 살펴보자면, 미국을 중심으로 하는 자본주의 권과의 관계 개선에 초점을 맞춘 동진전략이라고도 할 수 있다. 이는 중화제국 시기에 내부 역량이 그리 강하지 않았을 때 전형적으로 펼치던 '원교근공' 책략으로도 해석될 수 있다.
그런데 시진핑 주석이 돌연 서진전략을 펼치겠다고 한다. 기존의 동진전략에서 벗어나겠다는 것이다. 서진전략을 거의 최초로 2012년에 제기한 왕지스(王缉思) 베이징 대학 국제관계학원 원장의 주장은 참고할 만하다. 그는 미국의 아시아로의 회귀 전략을 '선수(先手)'로 인식하고 있다. 동진 전략은 현실적으로도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중국의 역량이 일정하게 제고되었으므로 서진 전략을 통해 아시아 지역에서 세력의 균형을 맞춰야 한다고 주장했다.
중국이 대외 전략의 차원에서 동쪽으로는 더 이상 확장의 여지가 없는데, 미국은 아시아로의 전략 중점을 옮겨오고 있는 상황이다. 그렇기 때문에 중국은 대 아시아 외교를 강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주장을 중국의 시진핑 지도부는 받아들였다. '일대일로'는 서진전략의 구체적인 사업이다. 중단기적으로 '일대일로' 방안의 핵심적인 사업 지역은 중앙아시아와 동남아시아다. 중국이 아시아로의 회귀라는 미국의 접근을 용인하지 않고, 본격적으로 자신의 주변지역에 대한 영향력 확보에 나서겠다는 것을 천명한 것이다.
AIIB는 중국의 '일대일로' 사업을 실현할 국제적인 투자협력 기구다. 아시아에 낙후 지역 개발을 위한 투자 협력 기구는 이미 존재한다. ADB(아시아개발은행: Asia Development Bank)가 바로 그것이다. 중앙아시아에서는 1997년 ADB가 주도한 CAREC(중앙아시아 경제협력체, Central Asia Regional Cooperation)가 이 지역의 기초시설 건설을 담당하고 있다. 물론 중국도 여기에 적극 참여하고 있다.
중국 대외전략의 대전환그런데 왜 중국은 독자적인 기구를 설립하려는 것일까? ADB는 현재 중국과 한창 대립각을 세우고 있는 일본이 주도한 것이다. AIIB는 이에 대한 견제의 성격이 있다. 또 위안화의 국제적 사용 빈도를 늘여나가는 중요한 플랫폼으로 삼겠다는 의도도 포착할 수 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최초로 제기한 나라인 중국이 가장 많은 자본금 출자국이라는 지위를 활용하겠다는 것이다. 자기 입맛에 맞게 아시아 저발전 지역에 대한 개발을 진행할 수 있다는 셈법이다.
부수적으로 국제 금융 및 경제 영역에서 중국이 제기하고 주도하는 최초의 협력 기구라는 의미도 있다. 미국과 일본이 저개발 국가 및 지역에 대한 원조 및 개발 사업을 빌미로 그 영향력을 확대해온 것을 중국이 벤치마킹한다고 볼 수 있다. 중국에게는 일거다득이다. 중국의 의도를 간파한 미국과 일본은 이 기구의 효용성을 폄하하면서 설립을 반대해왔다.
이렇게 봤을 때 중국이 본격적으로 동굴에서 나올 채비를 하고 있다고 판단된다. 내상 치유가 끝나나고, 내공을 회복했다는 것이다. 중국 역사에서 내부 정비가 끝나고 본격적으로 대외 확장에 나설 때와 비슷한 형국이다. 이럴 때 전형적으로 사용한 책략은 바로 '근교원공'이다. 주변부를 튼튼히 하면서, 다른 강대국들을 하나씩 격파한다는 것이다.
물론 미국의 아시아로의 회귀라는 선수에 이은 후수다. 하지만 미국과의 경쟁과 갈등을 불사하면서까지 주변부를 챙기겠다는 것은 이전 시기의 중국 외교 전략과는 상당히 다른 대목이다. 이 때문에 중국 외교의 공세화에 대한 주장이 학계와 언론계로부터 제기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미국의 아시아 회귀 전략에 대해 중국이 반격을 가한 셈이다. 오바마 정부의 아시아 회귀정책은 부상하는 중국에 대한 견제의 측면도 있다. 따라서 현재 세계의 패권국인 미국이 긴장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보기 좋게 출발하는 중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