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십계단 기념비 뒷면 <경상도 아가씨> 가사
이준희
원형성에서는 아쉬움이 좀 있지만, 현재 사십계단이 원래 자리에서 그렇게 많이 떨어진 것은 아니므로, 노래가 만들어질 당시 정경을 떠올리는 데에는 부족함이 없다. 하릴없이 사십계단에 걸터앉아 부산항을 바라보면서 이북 고향에 돌아갈 날만을 그리는 피난민의 애처로움이 가슴 저릿하게 느껴진다.
이 노래가 미도파레코드의 첫 작품으로 선택되었던 이유도 어쩌면 음반사를 운영한 임정수 사장 본인이 평안도 출신 실향민이었기 때문일지 모른다. <경상도 아가씨>로 첫 걸음을 내디딘 미도파레코드는 이후 서울로 근거를 옮겨 이름도 지구레코드로 바꾸었고, 이미자의 <동백 아가씨>와 조용필의 <창밖의 여자> 등 기념비적 음반을 제작하며 한국 음반업계의 메이저로 군림했다.
<경상도 아가씨> 외에 조용필의 <돌아와요 부산항에> 노래비도 빠질 수 없는 부산 대중가요의 기념물이다. 부산 대중음악계가 이미 활력을 많이 잃은 뒤인 1970년대에 발표된 곡이기는 하지만, 부산 소재 대중가요 중 단연 최대 히트곡인 <돌아와요 부산항에> 노래비는 1994년 해운대 해변에 세워졌다. <해운대 엘레지> 노래비에서 멀지 않은 곳이다. 1980년대 부산 소재 대중가요의 대표작인 <부산 갈매기>도 2011년 오륙도 등대에 노래비가 세워졌고, 부산의 대표적인 명승지 태종대에는 2013년 <태종대> 노래비가 들어섰다.
앞서 살펴본 현인, 백영호의 노래비와 아울러 보면, 부산 대중가요 노래비가 2000년 이후에 많이 세워졌음을 알 수 있는데, 기념할 만한 작품이 많아서이기도 하지만, 지방자치단체 간의 관광 기념물 확보 경쟁심리도 노래비 다수 조성에 어느 정도 배경이 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한 시대를 풍미한 노래도 전혀 아닌 것을 해당 지역을 소재로 하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노래비까지 세운 태종대의 경우는, 그러한 경쟁심리가 낳은 대표적인 부작용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