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자주 산책 가는 치악산 구룡사 들머리(원통문)
박도
느림의 미학
시골에서 내 차 없이 살자면 '기다림'에 익숙해야 한다. 그 까닭은 마을과 마을을 이어주는 농촌 버스는 배차 간격이 30~60분 정도이고, 심한 경우에는 하루에 서너 차례밖에 다니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버스운행시간은 있지만 그걸 일일이 다 욀 수도 없거니와 중간 간이정류장에서는 그 시간이 들쭉날쭉하기에 더욱 그렇다. 평생 운전면허증이 없이 살아온 나는 늘 한 세기 늦게 사는 기분으로, 그 '느림의 미학'을 마냥 즐기며 살고 있다.
일선 교단에서 물러나 강원도로 내려온 지 어느 새 11년째다. 강원도 산골에 살면서 길들인 버릇은 하루에 한 차례씩 산책하는 일이다. 한방, 양방 의사 모두 노후 건강의 비결로 산책을 권유한 탓도 있지만, 호젓한 산길이나 들길을 걸으면 정신으로나 육체로나 매우 좋다. 그래서 점심을 먹은 뒤면 으레 산책길을 나서기 마련이다.
안흥 산골에서 산책 코스는 언저리 산길이었다. 하지만 5년 전 원주로 나온 이후, 산책 코스는 그날 버스정류장에 도착하는 시내버스에 따라 목적지로 가서 산길이나 들길, 또는 강 언덕길을 걷는 것으로 바뀌었다. 그 산책을 마치면 그곳 간이버스정류장에서 돌아오는 시내버스를 무작정 기다리기 일쑤이다. 그래서 그 언제부터는 그때를 대비하여 책을 한 권 가방에 넣고 간 뒤 간이버스정류장에 앉아 책장을 넘기면서 버스를 기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