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화장실 문에 붙인 금연 포스터자신의 몸을 소중히 여기도록 하는 교육, 담배를 피우면서 매운 연기와 시커먼 재, 뜨거운 불똥으로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최소한의 흡연 예절 같은 것 정도라도 온전히 가르치면 어떨까.
임정훈
중딩들의 '흡연 잔혹사'사실 중딩들의 흡연이 어제 오늘의 일만은 아니다. 예전에도 그랬다. 최근에는 여중생의 흡연이 큰 비중으로 늘어났다고 한다. 실제 학교에서도 보면 담배를 피우는 여학생들이 많아졌다. 손에 담배 냄새를 배게 하지 않으려고 나무젓가락으로 담배를 집어서 피우던 것도 이제는 아주 옛날이야기이다. 일부 여학생들은 화장과 향수로 담배 냄새를 위장하려 애쓰지만 사냥개보다 후각이 예민한 교사들에게 들통 나기 일쑤다.
진작부터 흡연이 중딩만의 일은 아니었다. 18세기 조선의 사대부였던 '이옥'은 담배 백과사전이라고 불러도 좋을 <연경(烟經)>이라는 책을 남겼다. 이 기록을 살펴보면 옛날옛적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이 있었던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정조 대왕과 다산 정약용은 담배를 정말 사랑한 애연가이자 골초였다고 한다. 남녀노소 안 가리고 골고루 담뱃대에 부싯돌을 그어대던 시절도 있었다. 담배를 태우기 적절한 때와 흡연을 금하는 때를 구분하여 일목요연하게 일러주기도 하는데 이는 오늘날 금지 만능의 금연교육에서는 결코 찾아볼 수 없는 탁월한 가르침이다.
1653년 조선에 표류했던 하멜이 쓴 <하멜표류기>에서는 "이 나라에서는 담배를 많이 피우는데 여자들은 물론 네댓 살 아이도 담배를 피운다, 담배를 피우지 않는 사람은 거의 없다"라고 조선의 풍속을 기록했다. 이런 기록들을 보면 조선은 '담배의 나라'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정도다.
최근에는 국민들의 건강을 염려(?)해서 정부에서 담뱃값을 훌쩍 올려도 그러거나 말거나 금연 결심은 작심삼일로 마무리 짓고 비싼 담배를 다시 피워 물어 나라 살림에 보태는 어른들이 얼마나 많은가. 학교 안에서 금연할 것을 법률로 정하고 있지만 아랑곳 않고 태연하게 담배를 피워 무는 교사들은 또 어떻고.
그러나, 학교는 여전히 담배를 피우는 학생들에게만 경고와 징계를 앞세우고 학교 밖으로 퇴학시키기를 즐긴다. 형식적인 금연침 시술 등의 몇몇 프로그램 말고는 아무 것도 없다. 안 한다. 무조건 담배는 피우면 안 된다. 만약 피우다 걸리면 징계 아니면 퇴학, 이게 철통같은 학교의 법이다.
지난 3월 대전의 한 여고에서 흡연으로 꾸중을 받은 학생 2명이 부모를 불러오라는 학교 측의 위협이 두려워 자살한 사건이 있었다. 이 역시 징계 만능의 학교 금연 교육이 빚은 참사다. 흡연을 이유로 수십 명의 학생을 퇴학시킨 학교들도 있다. 담배를 피운다는 이유로 문제아로 낙인 찍히고, 흡연은 학교에서 골치 아픈 '문제아'를 솎아내는 가장 쉽고 편한 징계의 근거가 된다.
학교들의 이러한 비겁한 행동은 학생들의 건강을 생각하거나 교육적인 방안을 모색하는 데 관심이 없기 때문이다. 그보다는 외부에서 바라보는 학교의 이미지, 주변의 평판 같은 이른바 '학교 질관리'에 학교들이 관심과 신경을 훨씬 더 많이 쏟는 데 그 원인이 있다.
학교도 알고 있다. 징계를 앞세운 금연 위협이나 양심에 반하는 강요된 금연서약서만으로 학생들이 절대로 담배를 끊을 수 없다는 것을. 그러나 학교는 그것 말고는 아무 것도 할 줄을 모른다. 그렇다고 그냥 둘 수도 없다. 학교 밖에서야 어쩔 수 없더라도 제발 학교에서만이라도 학생들이 담배를 피워 물지 않기를 바랄뿐. 내용 없고 하는 것 없는 학교금연교육의 실체가 바로 이것이다.
학생들이 온갖 위협과 징계에도 불구하고 그래도 담배를 피운다면, 무조건 징계와 퇴학으로 다스리는 일은 학교에서 사라졌으면 좋겠다. 만 열아홉 살만 넘으면 아무 문제가 안 되는 일이 아직 그 나이에 이르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낙인과 징계의 구실이 되어 학교에서 쫓겨나는 데까지 이르는 건 너무 아픈 현실이다.
그보다는 학생들이 자신의 몸을 소중히 여기며 금연할 수 있도록 계기를 만들어주고 기다려 줄 수 있는 교육, 이미 18세기 300여년 전에 '이옥'이 그랬던 것처럼 최소한의 흡연 예절이라도 올바르게 가르쳐서 담배를 피우더라도 매운 연기와 시커먼 재, 뜨거운 불똥으로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도록 하는 건 어떨까.
흡연권도 제 권리라며 남들이야 불편해 하든 말든 저 혼자 매운 연기를 뿜으며 거리를 활보하는 무뢰한을 만들기보다는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면서 제 삶을 누리도록 하는 게 더불어 살아가는 지혜를 가르치는 일일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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