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건호 내가만드는복지국가 공동운영위원장
권우성
지난 2004년 11월 어느 이른 아침. 그와 스웨덴 스톡홀름의 시내 중심가 호숫가에 앉았다. 일주일여 동안 스웨덴 사회와 복지 시스템을 봤던 터였다. 그에게 대뜸 물었다. "우리는 언제쯤 제대로 된 복지를 누릴수 있을까요"라고. 그는 특유의 헛웃음을 지으며 "시간이 필요하겠지"라고 말했다. 그리고 우린 별다른 말없이 호숫가를 걸었다. 그렇게 11년이 흘렀다.
오건호 내가만드는복지국가 공동운영위원장은 진보진영에서도 몇 안 되는 복지와 연금분야 전문가다. 국회 보좌관 시절엔 사회복지 분야에서 정부를 상대로 날카로운 비판과 대안을 내놓기도 했다. 이후 총선과 대선으로 이어진 '복지논쟁'에서도 '보편적 복지국가'의 정책 틀을 제시하기도 했다. 특히 국가 재정의 혁신과 강한 복지를 통한 경제 선순환 등을 꾸준히 주장해왔다.
6일 오후 서울 마포구 상암동에서 그와 마주앉았다. 오랜만이었다. 갑작스런 국민연금 논쟁을 둘러싼 그의 생각이 궁금했다. 그는 2007년 국민연금 개혁 과정에서 기초노령연금 설계 과정에 직접 참여해온 당사자이기도 하다. 1시간여 동안 진행된 인터뷰 내내 전화벨이 울렸다. 대부분 언론사로부터 온 것이었다. 의자에 앉으면서 "오늘 국회에서 (공무원연금 개혁안이) 처리될 것 같지?"라고 물었다(하지만 이날 연금개혁안 처리는 무산됐다).
- (여야의) 이번 합의를 예상하셨나."(고개를 절레 흔들며) 전혀 예상못했다."
- 원래는 공무원연금 개혁이었는데, 지금 논쟁은 국민연금이 돼 버렸다."그렇게 됐다. 공무원 연금에 대한 국민들의 따가운 시선도 있었고, 결국 공무원 스스로 연금을 지키면서, 야당과 함께 국민연금 (소득대체율) 올려주는 것으로 갔는데... 구체적인 수치까지 나올지는 생각 못했다."
- 어떻게 갑자기 국민연금 소득대체율 10% 인상이 나왔을까."적어도 내가 이해하기론 이번 (공무원)연금 개혁 협상 과정에서의 압박카드용 정도였다. 공무원 노조 등에선 새누리당과 정부로부터 양보를 얻어내기 위한 협상카드였다. 공무원들이 자신들이 받을 연금액을 양보하는 대신에 국민연금 인상으로 돌리면서 나름의 명분을 쌓기 위한 것이었다."
- 새누리당은 뒤늦게 청와대와 정부에서 반발하니까 발을 빼버린 셈이 됐다."(웃으면서) 새누리당 지도부는 시간에 쫓긴 것 같았다. 공무원연금개혁이라는 성과물을 청와대에 보여주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결과적으론 우스운 꼴이 돼 버렸다. 아니면, 그동안 (국회의) 나쁜 관례처럼 서로 합의해놓고 여론을 살펴가며 시간끌기용으로 쓰려고 했을지도 모르겠다."
"시간에 쫓긴 새누리, 국민연금 압박용 카드 덮석 받아"그는 "공무원 연금이라는 특수직 연금과 국민연금은 전혀 차원이 다른 문제"라고 말했다. 2000만 명이 넘는 국민들의 노후보장과 직접 연결돼 있기 때문. 그는 대신 공무원노조 등이 이번 합의 과정에서 '공적연금 강화'라는 의제를 공론화한 점을 높게 평가했다. 하지만 그의 평가는 거기까지였다. 특히 이번 합의안 핵심인 '국민연금 급여율 50%'에 대해선 충분한 사회적 논의가 필요하다는 점도 분명히 했다. 그의 말이다.
"국민연금 문제는 완전히 다른 차원이죠. 그 규모나 국민들에 미치는 영향을 생각하면 말이죠. 지금처럼 현 세대가 돈을 쌓아두고, 일정 나이에 오른 사람에게 주는 방식(적립식)에선 기금 재정문제는 불거질 수밖에 없어요. 게다가 저출산 고령화시대인데... 그래서 5년마다 재정상황을 점검하고, 보험료를 올릴지, 얼마나 받게 할지 등을 논의하는 험난한 과정도 있었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