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통일 서울시민 1000인 원탁회의서울 25개 지역과 각 부문들이 참여하는 원탁회의가 열린다.
겨레하나
김민웅
(광복70돌, 6.15공동선언 발표 15돌 민족공동행사 서울준비위 상임대표)
70년이라는 시간은 한 인간에게도 삶의 중요한 의미를 갖습니다. 요즈음 70세는 예전과 비교해보면 청년의 기운이 느껴질 정도로 달라졌습니다만, 살아온 세월의 무게는 결코 만만치 않습니다. 한 민족의 역사도 이런 시선으로 돌아보면, 그 안에 담겨 있는 우여곡절과 파란만장한 사연들을 기록한 이야기가 참으로 적지 않습니다.
19세기 말과 20세기 초반, 우리는 동아시아의 거센 폭풍 앞에서 휘청거리고 결국 식민지라는 비극적 충격 속에 끌려 들어갔습니다. 백번 남 탓을 해봐야 소용이 없는 일이었습니다. 시대가 우리에게 버겁기 짝이 없었다고 해도, 제대로 된 준비와 대응이 있었다면 역사는 다른 길을 걷게 되었을 겁니다. 광복 이후의 역사도 이와 다르지 않았습니다. 결국 한 마디로 말하자면, 우리 자신이 어떻게 하는가에 따라 우리의 미래가 달려 있는 것입니다.
남과 북이 하나가 되지 못하면, 그래서 전격적으로 변모하고 있는 21세기 동아시아의 현실을 감당할 수 있는 힘을 갖지 못하게 된다면 1백 년 전의 비극은 과거지사가 아닐 수 있습니다. 한 사회가 분열로 지새운다면 그 사회의 앞날은 어두울 것입니다. 한 민족이 분열을 넘어서기 보다는 적대와 전쟁위기 속에 매일을 지내고 있다면 그 민족의 앞날 역시도 희망을 갖기가 매우 어려울 것입니다. 더군다나 강대국들이 둘러싸고 민족의 힘이 하나로 뭉치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는다면 이는 더더욱 우리에게 고통의 연속이 되고 말 것입니다.
남과 북은 분단의 역사를 끝내고 통일을 위한 걸음으로 나가야 한다는 것을 서로 모르지 않습니다. 이런 식으로 계속 산다는 것은 서로에게 재앙일 뿐만 아니라 동아시아의 현실에서 점점 더 불리한 처지에 빠지게 된다는 것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상황을 뛰어넘기에는 많은 제약과 장애가 있습니다. 이런 한계를 벗어나는 여지를 만들 수 있는 것은 오로지 시민사회만이 가능합니다.
오늘날 우리는 남과 북 사이에 건너기 어려운 심리적 거리가 날로 더 확장되고 있는 것을 체험하고 있습니다. 함께 지내고 싶은 우리 동족이라는 생각이 자꾸 사라져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냥 이대로 서로 떨어져 사는 것이 편하다, 라는 생각 말입니다.
얼핏 그럴 듯합니다. 그러나 그렇게 하면서 우리는 자신이 발휘할 수 있는 능력이 얼마나 심각하게 제약되고 있는지, 더 나은 사회를 위한 자원이 얼마나 쓸데없이 낭비되고 있는지, 더 좋은 국제적 위상을 확보할 수 있음에도 그 기회를 끊임없이 날려버리고 있는지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더 낫고, 더 편한 삶이 분단을 넘어서 통일로 가는 길에 이루어질 수 있는데도 이에 대한 믿음이 무너져가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결국 우리자신 모두에게 크나큰 손해를 자초하는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냥 전략적으로만 생각해도, 분단은 우리에게 장사가 되지 않는 일입니다. 오늘날 일본이 다시 군사강국으로 회귀하면서 동아시아에 새로운 파장을 불러일으킬 것이 빤한 것만 봐도 판단내릴 수 있습니다. 혹 북에 대한 혐오가 있는 경우라도 남과 북이 서로 힘을 합해 한반도 전체의 평화와 번영을 가져오는 결단을 쌓아가야 우리의 미래가 보장된다는 것 정도도 다 알고 있지 않습니까? 순전히 우리 자신을 위한 이기적인 생각만으로도 분단은 해소되는 것이 유리해집니다. 전쟁의 가능성을 늘 염두에 두고 산다는 것은 정신분열증에 걸릴 일입니다. 우리 모두가 그런 분열증의 위험에 늘 놓여 있습니다.
이런 비정상적인 상태를 이제는 종식해야 합니다. 광복 70주년은 그런 결단과 선택을 하기에 너무도 적합한 시기적 상징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서울시민 1천인 원탁회의를 제한하고, 여기에 시민들의 뜨거운 참여를 기대하는 바입니다. 어디 1천인으로 제한하는 행사겠습니까. 그건 사실 최소단위지요. 그렇게 너도 나도 할 것 없이 서로 초대하고 함께 어울려 모이는 기쁨이 넘치면 그게 바로 분단을 넘는 역사의 걸음걸이가 될 것입니다.
무슨 대단한 역사의식을 요구하는 것도 아닙니다. 무슨 엄청난 의지와 결단을 요구하는 것도 아닙니다. 그냥 아주 사소한 일상이라도 평화롭고 풍요하며 아름다울 수 있는 것을 바란다면, 시작할 수 있습니다. 분단은 우리의 일상 곳곳에서 철책을 치고 진전을 가로막고 있으니까요.
모이는 것만으로 서로에게 큰 힘이 될 겁니다. 입을 열고 뜻을 나누는 것만으로도 내일이 보일 것입니다. 그러다보면 통일을 위한 우리 사회 전체의 힘이 자라나는 것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여러 가지 할 일이 참 많은 세상이지만, 우리에게는 분단을 넘는 일 만큼 기본적이며 절박한 일은 없습니다.
우리에게는 민주주의, 경제, 국제정치 이 모든 것들이 다 분단구조의 해소에 따라 그 열매가 결정되는 것이 현실의 진상입니다. 15년 전인 2000년 6월 15일은 이 발걸음의 소중한 1보였습니다. 이제 우리는 그 1보가 백보가 되고 천보가 되고 마침내 통일의 문을 여는 행렬로 이어지도록 하는 일에 나서고자 합니다. 부디 함께 하셔서, 감격적인 시간을 가질 수 있기를 바랍니다. 광복 70주년이 청년의 기세로 빛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