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길' 가에 피어나 자꾸만 발길을 붙잡던 들꽃 중 하나인 때깔 고운 붓꽃.
김종성
하늘과 바다가 눈부시도록 푸르다. 온 데를 둘러봐도 청산이다. 봄 바람 든 가슴 일렁이게 하는 섬 풍경이 내내 펼쳐지는 4코스 슬로길. 청산도 남쪽 해안에는 10∼20m의 높은 해식애 즉 해안 절벽이 발달했다. '낭길'은 그런 해안 벼랑길을 따라 걸어가는 길이다. 낭떠러지 곳곳엔 동백나무·후박나무·곰솔 등의 난대림이 무성하여 벼랑길을 덜 아찔하게 해줬다.
구장리에서 권덕리 마을회관까지 이어진 낭떠러지 길은 하늘에 떠 있는 듯, 바다에 떠 있는 듯 모호한 경계선을 따라 걷는 신비로움을 느낄 수 있었다. 청산도에 들어서면서 그랬듯, 자연스레 두 발이 느려졌다.
걷는 내내 투박하지만 거칠지 않은 청산도 남쪽 해안선의 속살이 그대로 발바닥에 느껴졌다. 관광객이 걷기 편하라고 만든 흔한 나무 데크 같은 인공 구조물이 없어서 오히려 더 좋았다. 오르막이 이어지는 곳이나 벼랑 옆길 위험한 곳은 튼튼한 동아줄을 난간삼아 걸쳐 놓았다. 자연의 특성을 살리고 친환경 걷기 길을 조성하기 위한 노력이 묻어 나왔다.
반짝이는 바닷물에 눈이 부셨다. 맑고 고운 하늘과 따사로운 햇살, 고려 청자가 떠오르는 색감의 남해 바다. 아스라이 펼쳐진 봄 바다를 내려다 보며 걷노라니 다른 계절엔 어떨지, 그냥 그대로 이곳에 눌러앉아 사계절을 느끼며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느 유명한 바닷가처럼 리조트와 펜션, 카페들이 전망좋은 곳마다 자리를 차지하고 있지 않아서 더욱 마음에 들었다. 사람으로치면 소박하고 진솔한 해안길이다.
높이 솟은 절벽 위 낭길까지 불어오는 바다의 살가운 미풍을 맞으며 해변의 오솔길, 울창한 숲길, 오르막 산자락 길 등 해안을 따라 다양한 길을 걸었다. 발치에 낮고 작게 피어난 들꽃들, 특히 보라색 붓꽃이 어찌나 고운지 고개를 숙이며 걷게 했다.
바다 속에서부터 바로 솟아 오른 직절벽 옆으로 난 낭떠러지 길을 지나갈 땐, 곁에서 들여오는 철렁철렁 파도소리에 아슬아슬하고 아찔한 스릴을 즐기며 걸었다. 바다 위로 간간히 떠있는 작은 섬들은 한 폭의 풍경화를 그려냈고, 인적 없는 낭길을 지나는 여행자를 덜 쓸쓸하게 해줬다.
청산도 최고의 해안 절경, 범바위 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