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사임당과 율곡 이이의 흔적이 묻은 오죽헌. 강원도 강릉시 죽헌동에 있다.
김종성
그는 신사임당을 높일 목적으로 장기간 방치된 신사임당의 묘소를 정비하는 사업을 착안했다. 송시열의 시문집인 <송자대전>에는 1668년에 그가 병조판서 홍중보에게 신사임당 묘소의 정비사업을 제안하는 내용의 서한이 나온다. 이때 송시열은 관직에서 잠시 물러난 상태에 있었다. 이 편지에서 송시열은 이렇게 말했다.
"이 선생(율곡 이이)의 부모님인 감찰공(이원수)과 신 부인(신사임당)의 묘소에는 묘표마저 없으니, 앞으로 백 년이 가기 전에 누구의 묘소인지도 모르게 될 것입니다."이렇게 말하면서 송시열은 병조 즉 국방부 예산으로 신사임당 묘소를 정비해줄 수 있겠는지를 문의했다. 서인당의 정신적 지주인 이이뿐만 아니라 그 어머니인 신사임당의 묘소까지 국가 비용으로 정비하려고 한 것을 보면, 송시열이 신사임당의 이미지 제고를 위해 얼마나 열성을 다했는지 짐작할 수 있다.
또 송시열은 글을 쓰는 방법으로 신사임당의 이미지를 바꾸는 데도 관심을 기울였다. 송시열은 70세 때인 1676년에 신사임당의 산수화에 글을 덧붙이면서 "신 부인의 어진 덕이 큰 명현을 낳으신 것은 중국 송나라 때 후 부인이 정이·정호 선생을 낳은 것에 비길 만하다"고 평가했다.
정이·정호는 주자의 성리학 사상에 영향을 준 학자들이다. 송시열이라는 대학자에 의해 신사임당이 정이·정호 형제의 어머니에 비견됐으니, 신사임당을 바라보는 조선 유학자들의 시선에는 한층 더 존경심이 서릴 수밖에 없었다.
송시열이 현모양처 신사임당 이미지 만들어또 송시열은 신사임당의 그림에 대한 기존의 비(非)유교적 해석도 배격했다. 그는 소세양이 신사임당의 그림에 대해 "소나무 정자에서 바둑 두는 승려들이 한가롭네"라는 글을 덧붙인 것을 두고 '부인의 그림에 대해 승려 운운하는 것은 마땅치 않다'며 배격했다. 신사임당의 그림이 불교와 연관되는 것을 견제한 것이다. 송시열은 그렇게 기존의 평가를 배격하면서 신사임당의 그림을 유교적으로 재해석하고, 또 그렇게 함으로써 신사임당이 화가보다는 대(大)유학자의 어머니라는 위상을 갖도록 만들었다.
송시열은 정치거물이자 대학자였다. 이런 인물이 신사임당에 대해 유교적 현모양처의 이미지를 집중적으로 부여한 것이 계기가 되어, 그 뒤로는 신사임당의 그림이 재해석되고 신사임당의 이미지도 현모양처로 고정되게 되었다.
송시열 시대에는 서인당이 시련을 겪었지만, 숙종시대 후반기에는 서인당이 힘을 추슬렀다. 그 뒤에는 서인당의 분파인 노론당이 계속해서 조선을 지배했다. 숙종·경종 다음에 영조·정조가 탕평정치를 통해 당파들을 견제하기는 했지만, 그 시기에도 노론당은 여전히 가장 강력한 정치세력이었다. 노론당의 지배력은 조선이 망할 때까지 계속 유지됐다.
이렇게 서인당과 그 후예인 노론당이 장기집권을 하면서 현모양처 신사임당의 위상은 계속 높아졌고, 이런 분위기의 결과로 신사임당이 대한민국 한국은행의 5만원권 모델로까지 선정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신사임당이 어머니의 대명사가 된 데에 정치적 배경이 전혀 없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물론 신사임당은 훌륭한 어머니이고 훌륭한 예술가였지만, 그를 이용해서 이익을 챙긴 집단이 있었던 것이다.
이처럼 신사임당이 현모양처의 대명사가 된 데는 아들 이이 못지않게 아들의 계승자인 송시열의 노력이 컸다고 볼 수 있다. 어쩌면, 저 세상에 있는 송시열의 어머니는, 남의 어머니를 높이고자 열성을 다 쏟은 자기 아들에 대해 서운한 마음을 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는 자기 아들을 추종하는 후세 사람들이 그 덕분에 지배권을 공고히 했다는 사실로부터 위안을 느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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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jongsung.com.시사와역사 출판사(sisahistory.com)대표,제15회 임종국상.유튜브 시사와역사 채널.저서:친일파의 재산,대논쟁 한국사,반일종족주의 무엇이 문제인가,조선상고사,나는 세종이다,역사추리 조선사,당쟁의 한국사,왜 미국은 북한을 이기지못하나,발해고(4권본),한국 중국 일본 그들의 교과서가 가르치지 않는 역사 등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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