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제완 할아버지올해 79세인 박제완 할아버지는 6.25 한국 전쟁 때, 이 골짜기에 피난 와서 자리를 잡았다. 이 기사에 들려주는 이야기들은 할아버지의 선배와 아버지 벌 되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이런 이야기를 자기 생전에 해야 할 거 같다는 마음이 들었다고 했다.
송상호
"조씨네는 금으로 부자가 된 겨""대동으로 조씨란 사람이 아들 다섯을 데리고 이사 온 겨. 근디 그 조씨 부인이 밤마다 꿈에 '묘지에서 사람이 나와 나를 위하면 좋은 일이 생길겨"라 하더랴. 그래서 그 부인이 날마다 '고시레(산이나 들에 성묘하고 남은 음식을 던지는 풍습)'를 한 겨. 그 귀신 먹으라고 말여.
조씨는 광산의 잡부로 일했단 말이여. 신기하게도 조씨 눈에만 금 조각이 가끔 눈에 띄더란 말이지. 그랴서 조심스러웠던 아내가 조씨에게 꿈을 이야기 하니 무릎을 친 겨. '그래서 그랬구나' 하면서.
그 후로도 금 조각을 주워서 조씨네는 돈을 좀 벌었쟈. 지금도 그 산을 조씨네산(석하리 대동마을쪽)이라고 그랴. 조씨 큰 아들(조한일)은 나랑 같이 학교도 다녔는디, 지금은 서울서 잘 살고 있재."
여기서 이 이야기가 끝나면 재미없다. 흥부가 박씨를 통해 부자가 된 걸 보고 놀부가 제비다리를 부러뜨렸다거나, 혹부리 영감이 도깨비에게 혹을 떼어주고 금을 얻으니 옆 마을 혹부리 영감이 도깨비에게 혹 주러 갔다 혹 더 붙인 이야기와 같은, 스펙터클한 이야기가 이어진다.
금덩이 판 지폐를 마당에서 다 태우다니, 왜?
"송말에 구복이 형제 이야기는 이 골짜기에서 유명한 이야기제. 지관(묘지 자리 봐주는 사람)이 묘지 방향만 잘 잡으면 복이 온다고 구복이 형제에게 말한겨. 그이들이 나보다는 10살 이상 더 위일겨. 암튼 조씨네 횡재 소식을 들은 그 형제도 한몫 잡아보려고 아버지 묘소를 이장 시킨겨.
아니나 다를까. 덕시골에서 그 형제가 지게 다리만한 금덩이를 주은겨. 크기로 말하면 40~50cm니 얼마나 큰겨. 횡재한 거지.
이 금덩이를 안성읍내 금방 사람에게 보여주니 입이 딱 벌어지면서 '지금 돈이 다 안 되니 내일 다시 오소'라 한겨. 당시 안성읍내 유일한 조흥은행에서 돈을 찾아 구복형제에게 줬는디, 100원 지폐를 비료 가마니에 하나 가득 눌러 담아준 거 아녀. 당시엔 시골서 300원만 있어도 부자소리 듣던 때 였는디.
그런디 말여. 어느 날, 그 돈을 마당에서 태우더랴. 왜? 일본이 항복하고 후퇴했응게 이 돈은 못 쓸 거라며 태웠다는겨. 그 많은 돈으로 그 형제가 산 거라 곤 '베 다섯 필과 보리쌀 다섯 말'이 고작이라 이 말이여. 사실은 몰라서 그런 거제. 환전하면 될 것인디. 허허허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