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 자락 산수유마을을 가로질러 흐르는 계곡. 산동면 소재지에 이르러 서시천을 이룬다. 진시황의 사신이 불로초를 찾으로 찾았다는 얘기가 전해지는 천이다.
이돈삼
사신 일행은 3000여 명이나 됐다. 이들은 모두 9척의 배에 나눠 타고 지금의 다사강을 따라 올랐다. 다사강(多沙江)은 모래가 많다고 해서 붙은 섬진강의 당시 이름이다. 이들은 다사강의 지류인 천을 따라 지리산으로 들어갔다. 그 하천이 여기다.
당시 사신의 이름이 서불(徐巿). 이름에 쓴 슬갑 불(巿)이 저자 시(市)와 똑같다. 서불천으로 불려야 할 이름이 '서시천'으로 됐다는 얘기다.
비슷한 얘기가 또 있다. 지금으로부터 2200여 년 전이다. 중국을 통일한 진나라 시황제가 불로초를 구해 오라고 서시 장군을 보냈다. 500여 명을 데리고 이곳을 찾은 서시 장군은 내와 계곡을 건너 지리산으로 들어갔다. 그래서 서시천이 됐다고 한다.
중국 월나라의 미인 서시와 관련된 얘기도 있다. 당시 월나라 왕 구천은 냇가에서 빨래를 하던 서시를 보고 한눈에 반해 후궁으로 맞았다. 월나라의 서시처럼 아름다운 아낙네들이 냇가에서 빨래를 많이 해서 서시천이 됐다는 설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