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잠든 시간 독서하며 사색하기
김태균
서울에서는 지정된 장소에서만 텐트를 칠 수 있었는데, 우리의 흐름대로 충청도와 경상도, 전라도를 여행하면서 원하는 곳에 머물 수 있었다. 자유로웠다. 한강이나 캠핑장에서 텐트를 칠 때면 누구의 텐트가 더 럭셔리한지 비교하는 듯한 분위기였는데, 더 이상 내가 갖고 있는 것을 남과 비교하지 않아도 됐다. 이제는 물건의 기능에만 초점을 두어 사용할 수 있게 됐다.
떠나오기 전까지 갓난아이와 내 몸을 돌보면서 1식 3찬을 해서 먹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야영을 하기에 1식1찬이나 2찬으로 간단한 요리만 해먹으니 살림에서부터 해방된 듯 싶었다. 집이 되어버린 텐트에서는 먼지가 쌓일 틈 없이 텐트를 걷어 들였다. 특별히 청소를 하지 않아도 됐다. 살림이 간편해지니 서로가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이 더 많이 생겼다.
시간과 공간에 여유가 생기니, 아이도 긴장하지 않고 대할 수 있었다. 밤중에 우는 아이를 이웃 눈치 보며 달래지 않아도 됐다. 산책을 할 때도 지나다니는 차와 오토바이에 신경 쓰지 않아도 됐다. 아이와 푸르른 자연 속에서 풀벌레와 강물 흐르는 소리를 들으며 평온하게 지낼 수 있었다.
텐트 생활에 있어 비가 걸림돌이었지만, 비로 인해 새로운 인연을 만나기도 했다. 전라남도 영암의 한옥마을을 돌아다니다 비가 너무 많이 내려 민박집에 머물려고 알아봤다. 하지만 민박집들은 더 이상 운영을 하지 않는다고 했다. 비오는 와중에 애타게 머물 곳을 찾고 있는 게 안쓰러워 보이셨는지 한 할아버지께서 자신의 집에 하룻밤 머물고 가라고 하셨다.
지은 지 얼마 안 된 한옥집에서 할아버지께서는 차를 대접하며 할아버지의 옛 이야기들을 꺼내주셨다. 할아버지는 시장에 잠깐 갔다 오시더니, 아이를 위해서 엄마가 영양가 좋은 것을 먹어야 된다며 우족을 푹 삶으셨다. 모르는 여행객에게 이렇게 성심성의껏 대접해주시니 송구스러울 뿐이었다.
한 달 간의 여행은 우리의 다음 길을 응원해주는 수많은 만남과 추억들을 남겨주었다. 또한 우리의 여정에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고 싶었던 분들의 선물이 쌓였다. 차 뒷좌석에는 쌀, 보리, 고추장, 된장, 매실액, 연잎차, 유모차, 아이 옷 등이 한가득 실려 있었다.
목포항에서 차를 배에 실으면서 나 자신에게 물었다.
'우리의 다음 여정도 다사다난한 삶인 게 보이는데 계속해서 나아갈 것인가?'아름다운 자연의 경이로움을 맛볼 수 있고, 사랑하는 동반자들과 함께 동고동락하면서 살아갈 수 있는데 무엇과 바꾸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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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과 탐험을 좋아하고 현재 덴마크 교사공동체에서 살고 있는 기발한 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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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달 동안 텐트에서 야영, 오히려 행복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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