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지하철 강남구청역 입구에서 운동원들이 시민들의 반대서명을 받고 있다.
오마이뉴스
강남구청(구청장 신연희)이 2조 원대 공공기여금을 다른 지자체에 사용하는 것을 반대하는 운동에 소속 공무원들을 조직적으로 동원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강남구청은 공무원들에게 할당량을 부여해 반대 서명을 받으라며 거리로 내보내는가 하면, 모범답안까지 제시하면서 서울시에 제출할 반대 의견서를 쓰라고 종용했다.
심지어 구청은 일부 주민들이 주최한 반대 집회에 공무원 300여 명을 '질서 및 안전요원'이라는 명목으로 참석시켰다. 강남구청이 중립성이 요구되는 공무원들에게 본연의 직무와 관계없는 일을 부당하게 시키고 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앞서 지난해 말 강남구 내 한국전력 부지를 낙찰받아 115층짜리 사옥을 짓게 된 현대자동차 그룹은 용도변경이라는 '특혜'를 받는 대가로 서울시에 2조 원에 달하는 공공기여금을 내야 한다. 국토의 계획 및 이용에 관한 법률(아래 국토법) 시행령 제24조(지구단위계획의 수립)에 따르면, 도시 개발 과정에서 발생하는 공공기여금은 지구단위계획 구역을 관할하는 시·군·구 안에서 사용할 수 있도록 돼 있다.
서울시는 이달 초 강남구 한전 부지와 송파구 잠실운동장을 묶어 국제교류지구로 확대 지정하는 '종합무역센터주변지구 지구단위계획 결정'(아래 지구단위계획 결정)을 발표했다. 이에 따라 한전 부지 관련 공공기여금은 지구단위개발구역인 강남구와 송파구에서 쓸 수 있다. 그러나 강남구는 공공기여금이 강남구가 아닌 송파구 잠실운동장에 쓰이게 될 것이라며 이를 반대해왔다.
부서별로 지하철역에서 서명받아... 1인당 200, 300명씩 할당강남구청 직원 A씨는 28일 "신연희 구청장이 총무과에 지시해 구청 직원들에게 (지구단위 계획 결정) 반대 서명운동을 받으라고 강제로 지시했다"면서 "구청과 지역주민센터 직원들에 1인당 200, 300명씩 할당량을 줘 주말에도 대형교회에 가서 서명을 받아야 했다"고 토로했다. 그는 "반대 서명운동에 구청, 주민센터 공무원뿐만 아니라 통장, 직능단체 직원들까지 광범위하게 동원되고 있다"고 말했다.
<오마이뉴스>가 입수한 '(강남구청) 부서별 근무 편성현황' 문건에 따르면, 강남구청은 부서를 가리지 않고 소속 공무원들을 관내 지하철역 출구에 집중 배치해 주민들의 서명이나 의견서를 받도록 했다. 예를 들어, 3호선 압구정역은 감사담당관, 3호선 신사역은 기획예산과, 3호선과 분당선 도곡역은 부동산정보과, 3호선 대치역은 교통정책과, 3호선 일원역은 도로관리과, 7호선 논현역은 보육지원과, 7호선과 9호선 강남구청역은 보건소 직원들이 담당하도록 편성, 지시한 것이다.
A씨는 "반대 서명 할당량을 채우지 못하면 부서에 불이익을 줄까 봐 친인척들한테까지 서명을 받아야만 했다"며 "각 부서는 할당량을 채우기 위해 코엑스, 현대자동차, 삼성 등 강남구에 있는 대기업에 찾아가 서명받기 경쟁을 벌이고 있다. 심지어 아이들까지 서명운동에 개입시키고 있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구청 공무원들의 친인척이나 대기업 직원들은 무슨 내용인지도 모르고 서명하고 있다는 것. 그는 "이 같이 실적을 위해 억지로 만들어낸 것이기 때문에, 진짜 마음에서 우러나온 서명은 얼마 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실제로 <오마이뉴스> 기자가 지난 23일 강남 일대 지하철역에서 목격한 서명운동 운동원들은 주민들에게 "아무 문제 없으니" 본인은 물론 가족들의 서명까지 함께해달라고 요청하고 있었다(관련기사 :
무려 2조 원이나 생기는데... '강남구만 혜택' 논란).
A씨는 "주무부서 과장이 구청 전 부서 서무주임들을 불러 반대서명 대책회의를 연 자리에서 '말귀들을 그렇게 못 알아먹냐. 공무원증 안 차면 공무원인 줄 누가 아느냐. 알아서 눈치껏 해라. 시민인 척 하고 서명운동하라. 한글만 쓸 줄 알면 누구에게든 다 받으라'고 말했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