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이 끝날 무렵부터 봄이 활짝 피어나다가 저무는 오월 첫무렵이면 감쪽같이 사라지는 이 작은 꽃송이는 '봄까지꽃'입니다.
최종규
ㄷ. 볍씨민들레씨가 동그스름하게 맺힙니다. 우리 집 아이들은 "민들레 씨앗이다!"하고 외치면서 꽃대를 톡 꺾은 뒤 후후 불어서 씨앗을 날립니다. 아이들과 여러 가지 열매를 먹으면서, 으레 씨를 뱉습니다. 감을 먹을 적에는 감씨를 뱉고, 수박을 먹을 적에는 수박씨를 맺습니다. 포도를 먹을 적에는 포도씨를 뱉습니다. 오이씨나 참외씨는 그냥 먹습니다.
우리는 쌀밥을 먹는데, 쌀밥은 쌀알로 짓고, 쌀알은 벼알에서 겨를 벗긴 속살입니다. 벼알은 봄에 논에 심어서 새로운 벼알을 거두도록 하는 씨앗이기도 합니다. 이리하여, 벼알은 따로 '볍씨'라고도 합니다. 예부터 얼마 앞서까지 시골사람은 볍씨를 씨오쟁이에 갈무리해서 잘 건사했습니다. 그런데 요즈음 들어 볍씨를 손수 갈무리해서 되심는 사람은 퍽 드뭅니다. 거의 다 농협에 가서 돈을 주고 사다가 씁니다. 농협에서는 '볍씨'라는 낱말을 안 쓰고 '벼 종자(種子)'라는 낱말을 씁니다. 그나마 '米種子'라고는 안 하지만, 농협 일꾼은 '씨·씨앗'이라는 낱말을 도무지 안 씁니다. 이리하여, 요새는 여느 시골마을 시골사람도 '볍씨'라는 낱말을 안 쓰고, 농협 일꾼 말투대로 '벼 종자'라고만 말합니다. 어느새 '씨감자·씨고구마'라는 말마디는 '감자 종자·고구마 종자'로 바뀝니다.
ㄹ. 무슨 밥 먹을까밥상을 차리는 어버이를 바라보는 아이가 "아버지, 오늘은 무슨 밥?"하고 묻습니다. "오늘은 무슨 밥을 먹을까?"하고 얘기하면서 곰곰이 생각합니다. '풀밥'을 할 수 있고 '고기밥'을 할 수 있으며 '미역국밥'이라든지 '감자국밥'을 할 수 있습니다. 아침저녁으로 무엇을 먹을까 하고 생각하면서, 우리가 먹는 대로 밥이름을 붙입니다. 밥을 하니까 밥하기이고, 밥이름을 붙이며, 밥먹기를 누리고, 밥삶을 헤아립니다. 바깥에 나가거나 다른 집에 가면, 으레 '요리'와 '식사'라는 말을 듣는데, 아이들이 '요리·식사'라는 말마디를 들으면 으레 이러한 말을 쓰면서 "오늘은 무슨 요리?"나 "오늘은 무슨 식사?" 하고 묻겠지요.
ㅁ. 까만조개껍데기가 새까만 조개를 한 꾸러미 얻습니다. 수세미로 껍데기를 박박 문지릅니다. 뻘물이 거의 빠졌다 싶어 커다란 냄비에 넣어 펄펄 끓입니다. 껍데기가 새까만 조개를 끓이니 국물이 파르스름합니다. 어쩜 이런 국물 빛깔이 나올까 늘 놀라면서 소금으로 간을 맞춥니다. 밥상에 국물과 조개를 올리니 아이들이 묻습니다. "까만 조개야?" "응, 까만 조개야. '홍합'이라고도 해." 아이들은 '홍합'이라는 말은 못 알아듣습니다. 낱낱으로 뜯어 '홍·합'이라 말하니 비로소 알아듣지만, 아이들 눈으로 볼 적에 껍데기가 까만 빛깔이니 '까만조개(또는 깜조개)'라는 이름을 써야 제대로 알아보겠구나 하고 느낍니다.
그러고 보면, 어른들은 조개를 두고 '조개'라 하기보다 '蛤'이라는 한자를 자꾸 쓰려 합니다. 커다란 조개라면 '큰조개'라 하면 될 텐데 굳이 '대합'이라 하고, 하얀 조개라면 '흰조개'라 하면 될 텐데 애써 '백합'이라 해요. 꽃과 같이 고운 무늬라 하면 '꽃조개'라 할 때에 쉬 알아들을 텐데 왜 '화합'이라 해야 하는지 아리송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