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탑골 혹은 탑동(塔洞)의 유래가 된 국보 2호 원각사지10층 석탑, 탑골공원 안에 있다.
김종성
낙원동 제1의 명소는 역시 탑골공원이다. 누구나 들어오라는 듯 늘 대문이 활짝 열려있는 이 공원은 크지는 않지만 오랜 역사 속 이야기와 사연들이 담겨있다. 이곳은 구한말 고종 때인 1897년(광무1) 탁지부(지금의 재무부)에 고문으로 와 있었던 영국인 J.M. 브라운이 설계해 파고다 공원이라는 이름의 서구식 공원으로 꾸민 서울 최초의 근린공원이다. 3·1운동 당시 많은 시민이 이곳에서 만세를 외쳤으며, 당시 학생 대표가 독립선언서를 낭독했던 팔각정도 잘 보존돼 있다.
높이 12m의 국보 제2호 원각사지(圓覺寺址十層石塔) 10층 석탑도 빼놓을 수 없다. 이 석탑은 조선 전기 도성 내 3대 사찰 가운데 하나인 사찰 원각사에 있던 탑이다. 전체를 대리석으로 건조했는데, 수려하고도 기교적인 면은 조선시대뿐 아니라 우리나라 탑파사상(塔婆史上) 손꼽히는 걸 작품이라고 한다. 기단부터 탑신부 꼭대기까지 온갖 동·식물과 인물상이 빈틈없이 조각돼있다. 요즘엔 탑을 보호하기 위해 유리 보호각으로 감싸놔 자세히 살필 수 없어 아쉽기도 했다.
이렇게 탑골공원 자리엔 고려 시대에는 흥복사(興福寺)가, 조선 전기 세조 때(1464년)는 원각사(圓覺寺)가 있었던 명당 자리다. 문득 공원 이름 앞에 붙어 있는 '탑골'의 유래는 무엇일까 궁금했다. '탑이 많은 고을이라서?' 유추하기 쉬운 순수 우리말의 특성대로였다. 흥복사, 원각사, 국보가 된 원각사지 10층 석탑 등 동네에 유명 사찰과 탑들이 많다 보니 낙원동의 원래 이름은 사동(寺洞), 대사동(大寺洞), 탑사동, 탑동(塔洞), 순수 우리말로 탑골이었다.
그럼 탑골 혹은 탑동에서 무슨 사연으로 낙원동이란 이름으로 바뀌게 됐을까 궁금했다. 알고 보니 낙원동은 1914년 10월 1일 일제가 대대적인 행정 구역 개편을 하면서 새로 생겨난 동네 이름이었다. 일제는 한국인의 이름을 일본식으로 바꾼 창씨 개명처럼 서울의 당시 이름인 '한성'을 없애고 경성부(京城府)로 고치는 등 우리의 산, 강, 지명을 일본식 이름으로 바꿨다.
이를 '창지개명(創地改名)'이라고 한다. 누구나 짐작할 수 있듯 한 나라의 역사와 문화를 말살하기 위해서였다. 부르기 쉽고 정겨운데다 마을의 문화와 특성이 잘 담겨 있었던 우리 토박이 지명은 조선 시대 한자 지명화됐다가, 일제강점기에는 유래조차 짐작할 수 없는 엉뚱한 지명으로 변질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