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구용 표적항암제 보험금을 미지급하는 민간보험사 횡포 고발' 릴레이 시위에 첫 번째로 참가한 김경희 씨
환자단체연합회
메리츠화재가 소송에서 잴코리 비용을 돌려달라며 내세운 논리는 놀랍게도 표적항암제 잴코리의 뛰어난 '표적치료효과' 때문이었다. 기존의 항암제들은 부작용이 심해 당연히 입원을 전제로 처방했지만 잴코리와 같은 표적항암제의 경우는 상대적으로 부작용이 적기 때문에 다르게 봐야 한다는 뜻이었다.
메리츠화재는 아무리 입원기간 중 처방 받은 약일지라도 잴코리는 원래 집에서 먹을 수 있는 약인데다, 실제로 김경희씨는 불과 2, 3일씩 입원 후 퇴원했기 때문에 "김경희씨가 집에서 복용한 잴코리는 '퇴원 후 복용하는 약(아래 퇴원약)'에 해당하며, 약관상 보험의 보장범위 밖에 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김경희씨 측의 주장은 다르다. 잴코리 복용 후 몸을 어느 정도 편하게 움직일 수 있을 뿐이지 일부 항암제 부작용을 여전히 겪어왔고, 입원 2, 3일 후 퇴원한 것은 집 근처 병원으로 옮겨 가족의 보살핌을 받으면서 입원치료를 받기 위함이었다고 설명한다. 실제로 그녀는 증거자료로 두 달간 타 병원에서 입원한 증거를 소송에 제출하기도 했다.
또 보험사의 주장 중 가장 파격적인 부분은 '퇴원약'을 약관상 보장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보통 실손보험의 약관을 보면 '입원치료비'와 '통원치료비', 두 가지를 보장한다고 명시되어 있다. 환자가 병원에 '입원' 아니면 '통원'해서 치료받는 방식이 전부이기 때문에 언뜻 치료비 전부를 보장해 주겠다는 의미로 들린다. 그런데 메리츠화재는 이번 소송을 계기로 '퇴원약'을 입원치료비에서 분리해 실손보험의 보장범위 밖으로 끄집어내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메리츠화재의 법무팀 담당자는 환자단체와의 면담에서 "현재 보험사들은 고가 비급여 퇴원약에 지급을 해주기도 하고 안 해주기도 한다"면서 "향후 경구용 표적항암제와 관련해서는 퇴원약에 대한 보장을 하지 않는 판례를 만들 계획이다"라고 밝혔다.
금융소비자연맹의 보험전문가는 "현재의 약관상으로는 입원치료비의 보장범위에 대한 해석이 분명치 않아 문제될 소지가 있다. 이번 소송은 사실상 사법당국의 판단에 따라 결정 날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같은 퇴원약이라도 경구용 표적항암제 같은 경우는 다른 비급여 약제와는 성격이 다르고, 처음으로 쟁점이 됐기 때문에 기존의 판례와 다른 결과가 나올 수도 있다"라고 설명했다.
김경희씨는 하는 수 없이 한 달 동안 매일 병원을 다니며 통원치료비를 수령했고, 그마저도 횟수가 30회로 한정돼 있어 그 이후에는 개인 비용을 들여 잴코리를 복용하고 있다. 사실상 메리츠화재에게 2천만 원을 빼앗기면, 2년에 걸쳐 받은 통원치료비 1800만 원을 빼고는 이제껏 복용한 잴코리 비용 1억 원 이상을 모두 김씨 개인 비용을 들여 구입한 셈이 된다.
더 가혹한 것은 수개월도 기약하기 힘든 말기 폐암환자가 매일 병원을 오가는 고통과 함께 가족과 함께 보낼 한 달의 시간을 허비했다는 점이다. 김씨는 자신이 왜 민간보험에 가입했는지 모르겠다며 허탈해하고 있다.
환자단체연합회 안기종 대표는 "입원환자의 퇴원약은 암, 희귀난치성질환 등 중증질환자들이 보장받아야 하는 중요한 치료비 영역이다. 최근의 항암제는 일정 기간 입원해 항암치료를 받은 후 경과가 좋으면 퇴원해 집에서 항암제를 계속 복용하면서 치료받는 것이 일반적이다. 또한 실손보험 가입자들이 집에서 가족과 함께 경구용 먹는 항암제를 복용할 수 있도록 약값에 대한 보장을 해주는 것은 환자에게 인간의 존엄성을 지켜주는 것이고 민간보험사가 반드시 해야 할 도리이기도 하다"라고 지적했다.
건강보험 공백기 손해 환자에게 떠넘기는 보험사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