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의 졸업식날, 그래도 아버지라고 구두를 들고 나타난 경숙 아배의 뒷모습에서는 앞서와는 다른 서글픔과 쓸쓸함이 한데 묻어나왔다.
수현재컴퍼니
극의 마지막, 딸의 졸업식장에 밤손님처럼 나타난 경숙 아배는 등 돌린 딸의 손에 구두 한 켤레를 쥐어주고는 늘 그랬듯 마지막까지 "어댈 그리 바쁘게" 떠나간다. 그럴거면 차라리 나타나지 말 것을, 그래도 아버지라고 "인생 모진 걸 알아야 어매가 되고 부모가 된다"는 모질디 모진 말만 남기고는 영영 돌아갈 곳 없는 어딘가를 향해 끝끝내 발길을 돌린다.
아직도 갈 데가 그리 많냐고, 그 군화는 언제 벗을 꺼냐고 오열하는 경숙의 눈물에 내 일 마냥 복장이 터질 무렵, 문득 시야에 차오르는 그의 뒷모습에서는 앞서와는 다른 서글픔과 쓸쓸함이 한데 묻어나왔다.
젊을 적 흐드러진 젓가락 장단에 맞춰 쑥스러운 듯 뽑아내던 구성진 노래가 떠오른 탓인지, 나이든 아배에 대한 막연한 안쓰러움에서였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쩌면 그는 번듯한 그들의 가족이 될 수 있길 부단히 소원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만 자식을 통해 비로소 부모가 되어가듯 가족 역시 스스로 지켜나가려는 각자의 노력 없인 결코 절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님을, 그로서는 자연스레 깨달을 방법이 없었던 건 아닐까 하는 지레짐작만 할 뿐이다.
기실 경숙 아배의 이야기는 비단 그만의 이야기는 아니리라. 운명처럼 부모가 되고 부모란 이름이 주어지기 시작하는 순간부터 겪어야 하는 숱한 시행착오가 마침내 그를 아버지로, 부모로 만들기 때문이다. 아마도 경숙 아배를 향한 알 수 없는 연민은 인물 자체에 대한 것이라기보다는 어느새 숙명처럼 '아버지'로서의 삶을 묵묵히 살아가고 있는, 이 땅의 모든 아배들에 대한 찡함일 것이다.
해를 거듭하면서 더해진 연출력과 배우들의 단단한 연기 탓에 극은 연극과 삶을 넘나드는 기이한 경험을 숙제처럼 안겨주었다. 어디선가 뽕짝의 가락이 들려올 때면 경숙 아배의 장구 치는 모습이 물기 어린 아련한 기억으로 떠오를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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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란 이름의 무게...철없는 아배의 모진 방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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