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시한 동아리’ 회원들이 인천여성회 서구지부 부설 풀뿌리미디어도서관에서 모임을 하고 있다.
김영숙
이날은 두 모둠으로 나눠 책을 읽고 소감을 나눈 후 글을 쓰는 시간을 가졌다. 작가 미치 앨봄이 쓴 <모리와 함께 한 화요일>을 읽고 돌아가면서 한마디씩 나눴다.
"죽음을 앞두고 겁은 나겠지만 아무 준비 없이 죽는 사람보다는 그래도 자기 인생을 돌아볼 수 있는 모리는 행복할 거 같아요. 저도 이런 순간이 주어진다면 내 인생을 돌아봐야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읽었어요.""저는 책에 있는 구절이 좋아서 옮겨 써봤어요. '어떻게 죽어야 좋을지 배우게, 그러면 어떻게 살아야 할지도 배우게 되니까'라고 모리 교수가 제자들에게 한 말인데요. 정말 그런 것 같아요."이 책은 작가의 실제 경험담을 다뤘다. 작가는 루게릭병을 앓으며 죽음을 앞두고 있는 대학 시절의 은사인 모리 교수를 매주 화요일 찾아간다. 교수는 삶과 죽음, 사랑, 가족 등, 바쁜 일상에서 놓치고 있는 중요한 것들에 대해 얘기한다. 얘기가 끝나자, 자신의 죽음을 떠올리며 유서를 작성하기 시작했다. 여기저기서 훌쩍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다른 모둠은 이금이 작가의 <유진과 유진>(푸른책들, 2004)을 가지고 이야기를 나눴다. 이 책에는 같은 이름의 '유진'이 두 명 나온다. 유치원을 다닐 때 원장으로부터 똑같이 성추행을 당한 큰 유진과 작은 유진은 중학교 2학년 때 같은 반이 된다. 큰 유진과 달리 작은 유진은 같은 유치원을 다닌 적이 없다고 말한다. 소설은 성추행을 당했을 때 부모가 어떻게 대처하는가에 따라 엄청나게 다른 삶을 살아간다는 것을 보여준다.
"우리가 자랄 때도 이런 일은 누구나 한 번씩 겪잖아요. 작은 유진 엄마는 자신의 경험이 떠올라 수치심으로 아이의 기억을 감췄던 게 아닌가, 생각해요."
한 회원의 말에 다른 이들은 공감의 뜻으로 머리를 끄덕였다. 이들은 소설의 주인공에게 편지를 쓴 후 돌아가며 읽었다. 두 유진 엄마한테 쓴 사람도 있고, 자기 딸에게 쓴 이, 유진이에게 쓴 이, 다양했지만 역시 눈물이 섞인 목소리는 낭독을 몇 차례 멈추게 했고, 끝까지 읽을 자신이 없다는 회원은 다른 이에게 낭독을 부탁하기도 했다.
밝은 기운의 공기가 조금 무거워졌지만 오히려 더 따뜻해졌다. 치유가 이런 게 아닐까.
시시(詩詩)한 동아리, 시를 쓰는 동아리매주 월요일 오전 10시 30분에 시작하는 이 모임은 정오 무렵 끝난다. 강윤희(40) 사무국장에게 동아리 소개를 부탁했다.
"지난해 6월에 만들었어요. 도서관이나 문화센터에서 인문학 강좌를 하는데 시나 글을 직접 쓰는 프로그램은 없더라고요. 대부분 작가의 경험을 듣는 강좌나 기술적인 걸 배우는 게 주를 이뤄요. 내 안의 생각이나 마음을 끄집어내 풀어내는 것이 아닌 무언가 채우려고만 하는 거 같아요. 자기를 표현하기 가장 쉬운 게 글이라고 생각해요. 물론 길게 쓰면 힘들 텐데 우리처럼 생활하면서 겪은 일들을 한 줄이라도 쓴다면 누구나 시작할 수 있죠."그래서 강 사무국장은 '시시한 동아리'가 추구하는 시는 쉬운 '생활시'라고 강조한다. 작년에는 인천시 사회단체보조금 지원 사업으로 선정돼 지원금을 받았고, 올해는 인천문화재단에서 지원금을 받아 외부강사를 초청할 수도 있게 됐고 워크숍처럼 역량을 강화할 수 있는 기회도 챙길 수 있게 됐다. '시시한 동아리'는 모임을 주도적으로 이끄는 대표와 사무국장의 이력만으로도 결코 시시하지 않았다.
풀뿌리미디어도서관 관장이자 동아리 대표인 안정옥(46)씨는 인천노동자문학회 사무국장을 지냈고, 지금도 꾸준히 시를 써 지면이나 인터넷에 발표하고 있다. 강 사무국장은 어릴 때부터 소설가를 꿈꿨지만 '밥 빌어먹는 직업'이라는 부모의 반대로 일찌감치 포기했다. 그러나 책이 좋아 이곳 도서관에서 사무국장으로 일하며 책을 손에서 놓지 않는다고 한다. 사색의향기문화원에서 운영하는 향기서평단에서 3년간 활동하기도 했다.
세상 어디에도 없는 나만의 책을 만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