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이니 앨리스에 모인 한일 연극인들3월 29일, 모든 정기공연이 끝난 후 뒤풀이 당시. 축사를 하는 니시무라 히로코 선생님
이형석
- 지난 30년 동안 사비까지 들여서 우리나라 연극인들을 초청하신 이유가 무엇인가요?"서양식의 연극은 많이 봤습니다. 견문을 좀 더 넓히기 위해서 시야를 외부로 돌렸는데 그때 싼 항공료로 갈 수 있는 나라가 서울하고 북경이었습니다. 서울에 도착해 한국 연극을 보고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 충격이 한국 연극에 대한 깊은 관심을 끌게 했습니다.
1970년대부터 1980년대, 비행기를 타고 서울에 도착해 대학로를 자주 찾아가곤 했습니다. 어두운 밤에 북을 치고 연극을 하고 있었는데, 그게 아마 항의를 하는 마당극이었을 겁니다. 그때 이현화라는 작가가 쓴 연극을 봤습니다. 제목은 생각이 안 나는데 역사극이었어요. 서양 연극에만 심취되었던, 즉 지식과 교양으로 제가 보고 접해왔던 연극과 달랐습니다. 그 당시 군사 정권하에서의 한국연극은 그 무렵의 현재를 그렸습니다. '아, 이들의 연극이 지금을 그리고 있구나'는 것을 피부로 느꼈습니다.
그리고 이윤택 선생님 연극을 보면서도 재미있다고 느꼈습니다. 그때 타이니 앨리스 극장을 처음 만든 반려자 미와와 함께 봤습니다. 고속도로에서 달리던 차가 고장 나서 한 여자가 내리는데, 그녀가 내린 곳에서 무당이 신들리고 쓰러지는 내용이었습니다. 설정된 무대가 38도 경계선이었죠. 거기서 넘어진 것이 인상적이었습니다. 경제적으로 막 일어나는 나라의 현실, 남과 북이 갈라져 있는 정치적 배경, 그런 복합적인 상황을 바탕으로 무엇인가를 염원하고 있었습니다. 그때 한국 연극만의 재미를 느꼈습니다.
또 부러웠던 점이 있습니다. 일본에서 전통 예능은 노(能, のう. 14세기에 시작된 전통 연극으로 일본 국내에서 전개되는 정치와 사회 변화를 상징하는 고유 양식)처럼 부자가 육성해왔습니다. 그에 비해 한국 마당극은 서민들이 키우고 즐겨왔습니다. 그래서 '아, 이건 참 좋구나'하는 생각이 들어 그런 연극만 모셔왔던 것이지요. 저는 나라와 나라의 관계는 싫어합니다. 도시와 도시를 좋아하고 미지의 재능을 발견하고 만나는 것이 행복합니다. 인위적이지 않지만 기쁨과 즐거움을 줄 수 있는 우연적인 만남이 좋습니다."
- 초대했던 작품 가운데 가장 기억에 남는 한국의 연극과 연극인에 대해서 말씀해 주세요."너무 많아서... (웃음) 굳이 꼽자면, 오태석 선생님 작품 중에 여섯 번째였나? 몸을 이용해서 벌레가 기어가는 것 같은 느낌을 표현한 게 있습니다. 서민들의 생활, 못사는 사람들을 그렸던 것이었습니다. 말이 통하지 않음에도 잘 이해할 수 있었고 재미있었습니다. 또 제목은 생각 안 나는데, 대학로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서 롱런을 한 작품이 있습니다. 남자가 광대 같은 예능을 계속 보여주면서 손님들한테 뭘 받기도 했던…."
"한국 연극, 사회에 대한 관심이 강하다"- 혹시 <품바>를 말씀하시는 것 아닌가요?아, 맞아요. <품바>. 그 다음에 여자(배우)가 <품바>를 한다고 해서 보러 갔을 때는 그렇게까지 재미있지 않았습니다. 처음에 했던 품바가 제일 재미있었습니다.
<품바>는 김시라의 각본과 연출로 1981년 초연한 1인극이다. 일제 식민지시대부터 자유당 말기까지 전국을 떠돌며 살다가 전남 무안 걸인촌(乞人村)에 정착한 각설이패 대장 천장근의 인생 역정을 각설이타령과 구전민요, 재담, 익살스러운 몸짓과 춤사위로 풀어냈다. 1인 14역을 맡은 각설이의 구수한 입담과 타령, 고수의 신명 나는 장단, 관객을 참여시키는 마당극 형식, 정치풍자 등이 어우러져 폭발적인 호응을 얻었다.
- 각설이가 나와서 하는 그 연극, <품바>의 무엇이 그렇게 선생님께 와 닿으셨나요?"광대가 가지고 있는 예능의 본질을 느꼈습니다."
니시무라 선생님은 한국 연극의 기원과 뿌리는 굿이라고 말했다. 그건 한일 연극 교류 코디네이터인 마정희 선생님도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나는 여기서 광대의 의미를 넓게, 우리 연극의 기원과 뿌리인 굿에 대한 포괄적인 용어로 받아들였다.
- 일본에도 우리나라의 각설이와 같은 광대가 있습니까?"물론 일본에도 다양하게 많습니다. 하지만 <품바>에서 돈을 달라고 하는 그런 식과는 조금 다른 느낌이 많죠."
- 선생님이 보시기에 일본 연극과 한국 연극의 차이점은 무엇인가요? "먼저 한국 연극은 사회에 대한 관심이 강한 것 같습니다. 앞서 잠깐 언급한 것처럼 지금을 보려고 하는…. 제가 그런 작품을 좋아해서인지 의식적으로 초청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일본 연극인들한테 그런 것을 훔치라고 주문합니다. (웃음) 둘째로 배우의 연기가 일본 배우들보다 굉장히 높다고 할 수 있습니다."
- 연기 수준, 굳이 꼬집어 말한다면 어떤 의미일까요? "한국은 연극을 가르치는 대학이 거의 50개에 육박한다고 알고 있습니다. 대학에서 연기를 공부했기 때문에 제대로 연기훈련이 된 것 같습니다. 반면, 일본은 대학에 연극학과가 그다지 많지 않습니다.
'언더그라운드 시어터'라는 것이 붐을 이루었던 시기가 있었습니다. 그때는 연기를 정말 못하는 배우들이 나와 재미없는 내용을 그대로 보여주는 '익살'이 있었습니다. 이는 '어떻게 하면 연기를 더 잘 할 수 있을까'하는 고민의 결과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