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옷의 신부이곳 여성들은 늘씬한 몸매에 높은 코, 움푹 들어간 눈매가 매우 아름답다.
정효정
사실, 파미르 지역에서 인상 깊었던 것은, 밝고 적극적인 여성들이었다. 토요일 저녁 레스토랑, 여자들은 중앙으로 나와 춤을 췄다. 막춤 일색이었던 키르기스스탄 여인들의 춤과 달리 파미르 여인들의 춤은 우아했다. 깊은 눈과 큰 키, 그리고 늘씬한 몸매가 춤을 더 멋지게 보이게 했다. 재미삼아 공중에 휘날리는 팔 동작을 따라해 보고 있는데 젊은 여성이 내게 와 춤을 청했다. 사람들은 박수를 치고 나는 중앙에 끌려나왔다. 난감하다. 앞에서 춤추는 아가씨처럼 우아하게 춤추기 위해 애써봤다. 불가능했다. 게다가 신체조건에서 이미 졌다.
신이 세상을 만들 때...
호로그에서 3시간 정도 차를 달리면 바탕 밸리에 위치한 지제브(Jisev, Geisev)라는 마을이 나온다. 이곳에 가기로 마음먹은 것은 가이드북 <론리 플래닛>에 소개된 내용 때문이었다. 이 아름다운 마을에 가기 위해선 수동 케이블카에 매달려 강을 건너야 한단다. 그리고 2시간 정도 걸으면 마을이 나타난다고 한다. 케이블카를 타고 가는 숨겨진 마을이라니... 흥미가 생겼다. 영국, 독일 친구와 함께 가기로 했다. 둘 다 내 나이 또래의 여성 여행자다.
일단 차를 타고 강을 건너는 지점까지 갔다. 하지만 가이드북에 소개된 케이블카는 운행 중단이고 그 옆에 긴 현수교가 새로 놓여 있다. 운행 중단된 케이블카는 내 상상과는 많이 달랐다. 강 이쪽과 저쪽을 로프로 연결해 놓았고, 초소처럼 생긴 작은 깡통 집이 있다. 이게 케이블 카였다. <론리 플래닛>의 최대 문제점은 사진이 없다는 거다. 말로만 설명을 해두니 짐작이 안 간다. 심지어 저 깡통집이 강 건너에 있을 때는 로프에 매달린 작은 판자때기를 타야 했단다. 현수교가 생겨서 다행이다.
▲지제브 마을로 가는 현수교 여기서부터 걸어서 2~3시간 가야 마을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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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블카현수교가 안 생겼으면 저걸 탈 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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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수교를 건너 본격적으로 걷기 시작했다. 구불구불 자갈길을 지나고, 숲길을 지나고, 중간에 비가 와서 바위틈에 숨기도 하며 두 시간을 올랐다. 개울을 건너자 "Welcome to Jisev(웰컴 투 지제브)"라고 적힌 바위가 보였다. 그 후론 온 세상이 꽃밭으로 변했다. 꽃을 헤치며 길을 걸었다.
우연히 만난 파견 간호사 로라는 노란 꽃은 위장에 좋은 꽃이고 하얀 꽃은 두통에 좋은 꽃이라고 설명해줬다. 옆의 친구가 황홀한 듯 중얼거렸다. "혹시 내가 죽어서 천국에 가고 있는 게 아닐까?" 나는 바로 정색을 하고 대꾸했다. "천국이 이렇게 배낭 메고 오르는 거라면 사양하겠어."
▲지제브 마을 사실 입이 딱 벌이지는 풍경은 아닌데, 걷고 있으면 행복한 곳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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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기 시작한 지 2시간 반, 첫 번째 마을이 나타났다. 이 지제브 계곡에는 세 개의 마을이 있는데, 총 가구 수는 15가구다. 첫 번째 마을에서 40분 정도 걸으면 두 번째 마을, 30분 후엔 세 번째 마을이 나온다. 마을마다 홈스테이 하는 집이 있다. 역시 전통적인 파미리 집이다.
첫 번째 마을에서 묵기로 했다. 저녁식사로 나온 감자스프는 빈약했다. 세수는 집 앞 도랑에서 했다. 태양열 전기는 일찍 끊겼고, 일찍 누운 우리들은 잠이 안 와 어둠 속에서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30대 여성들이 모이면 하는 이야기는 비슷하다. 결혼과 일.
▲첫번째 마을 호수에서 바라본 첫 번째 마을. 10가구 정도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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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 아침, 트레킹에 나섰다. 방을 나와 마당을 건너고, 마을을 지나 도랑을 건너고, 꽃을 따라 계곡을 건너고, 다시 오솔길을 지나면 에메랄드 색을 한 호수에 닿는다. 유난히 물빛이 푸른 건 석회석 때문이란다. 호숫가에 앉아 호로그 여행정보센터에서 샀던 책을 꺼내들었다. 파미르 지역의 풍습과 전설에 관한 책이다. 그 책에 이런 이야기가 실려 있다.
▲호수 가는 길 물 색깔이 새파란 것은 석회암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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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이 세상을 만들 때, 신은 사람들에게 땅을 분배할 테니 자신의 땅을 그려오라고 했다. 파미르 사람들의 대표자는 작은 몸을 가지고 있었고, 또 선량해서 다른 사람들을 팔꿈치로 밀치지 못했다. 그래서 줄의 맨 끝에 서게 되었다. 그가 신 앞에 도착하자 신은 깜짝 놀라며 말했다. "내가 계산을 잘못했구나! 이제 너에게 줄 땅이 남아있지 않다." 파미르 대표자는 울기 시작했다. 그 울음이 어찌나 슬펐는지 신도 함께 눈물을 흘릴 정도였다. 신은 다시 말했다. "모든 것은 내 잘못이다. 사실 내 정원을 만들기 위해 작은 땅 하나를 남겨두었다. 이 땅을 너에게 주니, 앞으로 이 땅을 바다흐션이라 부르도록 하여라" (Robert Middleton 'Legends of the parmirs'에서 발췌 )
그렇게 파미르 사람들은 하늘에서 가장 높은 곳, 그러나 신의 정원처럼 아름다운 곳에서 살게 되었다고 한다.
돌아오는 길, 이곳의 길은 반드시 누군가의 집을 지난다. 길을 걷다 보면 고양이가 먼저 뛰어나와 있고, 고개를 들면 파란 눈을 한 파미르 사람들이 웃고 있었다. 차를 권하기에 마시고, 약간의 돈을 찻잔 아래에 넣어두고 나왔다. 이곳 사람들도 한국 사람들처럼 돈을 꺼내면 손사래부터 쳤다. 신의 정원처럼 아름답긴 하지만 모든 것이 척박한 이 곳. 하지만 넘치는 것이 있다면 파미르 사람들의 정이었다.
▲"누구신지...?" 두 번째 마을에 도착하자 고양이가 먼저 뛰어 나왔다. 개 대신 기르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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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 마시고 가"지제브 마을에서 만난 파란 눈의 할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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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정보] 호로그에서 지제브 마을 가는 법 |
가장 쉬운 방법은 호로그 시장 앞에서 합승택시 기사와 흥정을 하는 거다. 혹은 근처 도시인 루샨으로 가서 다시 바탕 밸리로 가는 차를 타는 방법이 있다. 현수교를 건너 오르막길을 2~3시간 오르면 첫 번째 마을이 나타난다. 길은 외딴 길이어서 잃을 염려는 없다. 세 마을 다 합쳐서 전체 가구 수는 15가구 정도다. 각 마을마다 홈스테이가 있고 가격은 식사 포함 USD $15다. 간단한 영어가 통한다. 태양열 전기가 있고, 태양열 샤워시스템이 있긴 하지만 큰 기대는 않는 게 낫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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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작가, 여행작가. 저서 <당신에게 실크로드>, <남자찾아 산티아고>, 사진집 <다큐멘터리 新 실크로드 Ⅰ,Ⅱ>
"달라도 괜찮아요. 서로의 마음만 이해할 수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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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헤로인 좀 사 올게"... 이런 대화가 가능한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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