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랜서 삽화가 석정현 작가석정현 작가가 지난 4월 16일에 공개된 5분 3초짜리 짧은 영상이 큰 호응을 얻고 있다. 세월호 참사 1주기에 맞춰 공개한 이 영상은 19일 오전 현재 페이스북에서만 2만7천 여 차례 공유됐다. '좋아요'를 누른 숫자가 3만이 넘는다.
손지은
- 언제부터 구상한 것인가?"세월호 참사가 막 발생했을 때는 저도 슬퍼하고 분노했다. 하지만 몇 개월 지나니까 자연스럽게 '이만큼 슬퍼해줬으니 할 만큼 했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이게 은은한 치통 같았다. 계속 껴안고 살다가 어느 순간 화가 확 치밀어 이를 뽑아버려야겠다는 생각이 울컥 드는. 그 계기 중 하나가 지난해 신해철씨가 의료사고로 허무하게 떠난 일이다. 세월호 참사 희생자나 신해철씨나 한 번도 만나본 적 없는 사람이지만 이들이 자꾸 어이없는 일로 사라져버리니까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반복되는 악순환에 환멸이 들었다. 그래서 올해 초부터 차근차근 구상했다."
- 작업 과정이 궁금하다. "보는 것 그대로다. 내가 이틀 동안 그리는 과정을 약 5분 3초 안에 빠르게 보여준 거다. 배경음악 삽입 등 영상 편집은 아내가 했다. 아내가 음악을 고르는 데만 하루가 걸렸다. 10여 곡이 후보군이었는데, 그 노래들 중 '타임스탑(Time Stop)'이라는 제목을 보고 머리가 '띵'했다고 한다.
영상에 이 곡을 입혀서 보니 굉장히 복합적인 감정이 들었다. 마치 딸은 잃은 아버지가 딸의 어린 시절 사진을 한 장 한 장 넘겨보다가 점점 분노가 치미는 느낌을 받았다. 그 부분이 제작 의도와 잘 맞아 떨어져 선택했다. 페이스북에 달린 댓글들 중에서도 사운드 역할이 컸다는 의견이 많았다. 그렇게 꼬박 3일 동안 작업한 뒤 4월 16일 오후 11시 59분에 페이스북에 올렸다."
- 영상에 등장하는 인물은 특정인의 얼굴인가?"처음에는 특정 단원고 희생자 중 한 명의 얼굴을 그리려고 했다. 몇몇 유가족에게 자제분의 얼굴을 써도 되겠느냐고 허락을 구하기도 했다. 사진까지 받아서 봤는데, 한 사람의 이야기로 국한시키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가장 평범한 얼굴을 가진 가상의 인물을 만들었다. 단원고 희생자 아이들의 얼굴에서 조금씩 따오기도 했다."
- 올린 지 10시간 만에 페이스북에서만 1만 건 이상 공유됐다. 사람들이 뜨겁게 반응하는 이유가 뭘까?"지난해 '신해철과 단원고 아이들' 때도 그렇고 이번에도 반응이 좋아 감동적이다. '세월호'라는 단어를 언급하지 않고, 노란 리본 역시 넣지 않았다. '이건 세월호에 대한 이야기'라고 노골적으로 전달하면 그 자체로 거부감을 갖는 사람이 분명 있을 거라는 우려에서였다. 그럼에도 사람들이 단번에 알아봤다. 사람들의 반응을 보면서 나만 이런 생각을 하는 게 아니구나, 다들 비슷한 생각을 하는구나 싶어서 가슴이 찡했다."
"300명이 죽어가는 모습 생중계... 전 세계 이런 예가 있을까"- 세월호에 특별히 관심을 가지게 된 이유가 있나?"아이가 아파서 병원에 가던 길에 차에서 처음 참사 소식을 들었다. 그 때 다들 구출됐다고 해서 별 일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것이 오보임이 알려지고, 배가 조금씩 가라앉는 걸 봤다. 그 안에 300여 명이 탔다는데, 그들이 속수무책으로 죽어가는 걸 생중계로 지켜봤다. 너무 충격적이었다. 전 세계에 이런 예가 있을까 싶었다. 머리를 세게 얻어맞아 '멍'한 상태였다.
나는 머리가 나쁜 사람이다. 'VTS(해상교통관제센터)'가 어쩌고 하는 그런 소리는 잘 못 알아듣는다. 진상 규명을 위해 투쟁을 하자고 주장하는 건 아니지만 적어도 그만 하자는 말은 하면 안 된다. 옆집 아줌마가 자식이 죽었다고 슬퍼하면 같이 슬퍼하고 통곡하지는 못할망정 '자식은 가슴에 묻는 거예요' 따위 말은 하면 안 된다. 그건 상식이다."
- 많은 사람들이 '세월호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고 한다. 당신의 삶에도 큰 변화가 있나. "삶의 방향이 180도 바뀐 건 아니다. '2도'쯤 틀어진 거 같다. 내가 어떻게 바뀌었는지 구체적으로는 잘 모르겠다. 다만 내가 살고 있는 사회를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졌다. 나는 그동안 대한민국에서 잘 살아왔고, 외국 나가는 걸 매우 싫어했다. 그런데 떠나고 싶다. 실제로 중국에 잠깐 나가있으려고 알아보고 있다.
세월호 사건 이후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끼리 서로 포용하지 못하고 있다. 생각이 다르다는 것 자체만으로 적으로 몰아붙이고 괴물로 치부한다. 보수와 진보 둘 다 마찬가지다. 서로 날을 세운다. 물론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이 나에게 직접적으로 폭력을 가하거나 한 건 없다. 그러나 지금의 상황을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너무 피곤하다."
- 세월호 참사 이후 지난 1년을 바라보며 어떤 생각이 들었나."엉뚱한 얘기일지 모르겠지만, 그림을 그리다 보면 질리는 순간이 있다. 마감시간은 임박했는데 해야 할 일이 너무 많을 때다. 뭐부터 시작해야 할지 몰라 포기해버리기도 한다. '아유, 내가 그렇지' 하면서. '작업 빨리하는 방법이 뭐냐'는 질문을 자주 받는다. 매번 내 대답은 왕도가 없다는 것이다. 성급하게 색칠부터 하면 나중에 오히려 고칠게 더 많아진다. 일단 순서대로 스케치부터 하고, 다듬고 색칠하는 거다. 순서대로 하나씩 처리하는 게 제일 빠른 길이다.
세월호 참사로 드러난 우리 사회의 여러 문제점을 해결하는 방법도 그렇다. 나는 제도를 고치기 이전에 일단은 우리의 보편적인 인간성을 회복하는 게 우선이라고 본다. 누군가 슬퍼한다면 같이 슬퍼하고, 누군가 기뻐하면 같이 기뻐하는 거다. 그게 첫 번째다. 자식을 먼저 떠나보낸 사람들이 남은 삶을 이어갈 수 있도록 사회가 위로해야 한다. 그런데 국가가 이 역할을 해주지 않고 있다. 너무 참담하다. 그러면 국민이라도 대신 위로해줘야 하는데, 그만하라고 하면... 그들이 너무 외롭지 않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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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0명 죽는 모습 생중계하는 나라... 잠시 떠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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