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킬로그램의 우주, 뇌
사이언스북스
- "카이스트 명강" 역시 주입이 아닌 이해와 소통이군요."최재천 교수님이 항상 하시는 말씀이, "알면 사랑한다"입니다. 사랑하고 나서 아는 게 아니라 알게 되면 사랑하게 되니까, 사랑하게 되면 이전에 알던 것이 전혀 다른 것이 된다는 말씀을 항상 하세요. 그런 게 어떤 의미에서는 과학 대중화의 진정한 의미라고 생각합니다. 강압적으로 가르치기보다는, 알면 사랑하게 될 수 있도록 이해와 소통의 역할을 하는 거죠."
- 출판계에서 입버릇처럼 하는 말이, "단군 이래 불황"과 "필자 기근"입니다. 과학분야는 어떤 형편인지, 어떻게 국내 저자를 발굴하시는지요?"불황이고 필자 기근이죠. 하지만 조금 시각을 달리해서 긍정적으로 바라보면 과학 독자 층은 과거보다 매우 다양하게 넓어졌고, 난해한 책의 수요도 꾸준히 있습니다. 몇 만 원짜리 양장본, 어려운 내용을 담고 있는 책도 어느 정도 독자층을 확보할 수 있게 된 것 같아요. 예전엔 턱도 없었는데 말이죠.
일제강점기 이후 해방을 맞이한 시기를 우리 말과 글로 지식을 새롭게 유통하기 시작한 시점으로 잡으면, 사실 그 역사가 매우 짧습니다. 짧은 시간 동안 우리말로 지식을 유통하는 필자가 많이 늘어났고, 잠재적인 글쓰기 역량을 가지고 있는 분들도 굉장히 많습니다. 문제는 '구슬이 서말이라도 꿰야 보배'인데, 구슬을 엮을 수 있는 역량이 부족한 거라고 생각해요. 출판사와 편집자의 역량이 한국사회가 가지고 있는 출판 잠재력에 비해서 부족한 상태라고 평가하는 것이 정확한 진단인 것 같습니다. 과학책 편집자들이 분발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네요.
이석영 교수님이 쓰신 <모든 사람을 위한 빅뱅 우주론>이 한 300쪽 정도 되는 단행본인데요, 이것이 대학 내 평가기준에서는 10페이지짜리 논문에 비해 반 정도의 점수를 받습니다. 10페이지 영문 논문 한 편 쓰는 게 훨씬 유리한 거죠. 과학자 선생님들이 과학 단행본을 써야 하는 이유가 없습니다. 사이언스북스에서 과학 단행본을 집필하신 분들을 만나보면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을 더 많은 사람과 나눠야 한다는 사명감이 투철하십니다.
이런 필자들을 어떻게 출판계로 끌어들일 수 있는가 고민 끝에 나온 게 "카이스트 명강"이기도 하죠. 선생님들이 책을 쓸 시간이 없고, 이득이 없는 상황에서, 현장에서 실제로 연구하고 자신의 제자들을 키워낼 때 하는 이야기를 끌어내면서 강연도 하고 책도 낼 수 있는 플랫폼으로 고안한 겁니다.
"카이스트 명강" 같은 기획으로 다룰 수 있는 주제는 방대한 반면, 이것을 엮어낼 수 있는 편집 역량은 부족하다고 봅니다. 저희가 역량이 된다면 카이스트 명강을 한 달에 한 번 정도 진행하고, 한 달에 한 권씩 책을 낼 수 있을 텐데 현재는 일년에 한 번 진행하고 있어요. 편집자들과 출판사의 역량을 키워내는 게 출판사의 과제입니다. 저희가 더 분발해야겠죠."
- 올해 주목해야 할 과학 이슈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요? 덧붙여 올해 예정인 출간 리스트도 살짝 공개해주시죠."3월 말, '힉스 입자'를 발견한 CERN 강입자가속기 LHC를 재가동했어요. 아마 3~4년 이내에 엄청난 발견들이 있지 않을까 예상합니다. 여태까지 인류가 알고 있던 입자 물리학, 물질의 가장 근본적인 것, 구성요소에 대한 궁극적인 지식, 그 한계가 굉장히 넓어질 것이라 생각해요. 그래서 저희가 준비한 것이 이론 물리학자 리사 랜들이 쓴 <천국의 문을 두드리며(원제 : Knocking on Heaven's Door)>라는 책입니다. 과학이 어떻게 이 세계를 설명해내고 있는지에 대해 쓴 책이에요.
<수소폭탄 만들기(원제 : Dark Sun)>라는 책도 준비 중입니다. 퓰리처 상 수상 경력이 있는 과학 저널리스트 리처드 로즈의 <원자폭탄 만들기> 후속편이에요. 수소폭탄 만들기에 열을 올렸던 지난 냉전사를 과학적으로 조명한 책입니다. 대한민국 해방 후 70년 동안 우리 사회를 규정해 온 국제 정세가 무엇이었는가를 잘 보여주는 과학기술사입니다.
- 마지막으로 사북 책을 수준별로 추천해주신다면?"분야가 너무 다양해서… 가장 어려운 질문이네요. 하하. 음… 우리나라와 달리 영미권과 일본에서 인기 있는 과학책 분야가 있는데, 바로 광물학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전혀 인기가 없죠. '산에 굴러다니는 돌이 뭐냐?', '돌이 무엇으로 만들어져 있느냐?' 등을 탐구하는 책이죠. 특히 영국과 일본에서 굉장히 인기 있어요. 일본은 자주 지진이 나니까 지질학에 관해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겠죠. 영국은 땅을 파서 나온 광물로 산업혁명을 일군 나라니까 관심이 있는 건지 모르겠어요. 어찌 됐든 과학은 자기 주변에 있는 어떤 다양한 현상들, 진짜 자연, 눈으로 접할 수 있는 물과 나무, 풀, 공기와 곤충, 동물 등 자기 주변에 있는 진짜 자연을 접하는 데서 출발하거든요. 그래서 영미권이나 일본 과학 독자들의 이력을 살펴보면, 남자아이들은 공룡이나 화석에서 시작해서 광물학, 지구과학으로 이어져요. 아니면 공룡에서 시작해서 생물학으로 이어지고요.
공룡이라는 출발점에서 지구과학이나 생물학자들이 나오고, 천체 사진 찍고 별을 보는 것으로 시작해서 우주, 천문학자, 물리학자, 수학자 부류가 생겨요. 실제로 감각기관으로 접할 수 있는 자연을 "자연사", "natural history" 라고 하는데요, 영미권에서는 그 분야에 대한 관심이 굉장히 높아요. 거기서부터 과학이 시작되거든요. 그런데 한국은 많이 다르죠. 왜냐하면, 아이들이 초등학교 입학하면서부터 자연과 격리되거든요. 칼 세이건이 이야기했던 탐구의 자유가 그때부터 꺾일 수도 있습니다. 저는 만약 과학 입문을 다시 하려는 분들이라면 자연사 책들을 읽는 것이 제일 좋을 것 같아요. 아이들과 같이 읽으면 좋겠죠.
최근에 나온 <별빛 방랑>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천체 사진을 담은 책이죠. DK 백과사전 <우주>에 비했을 때 전혀 꿀리지 않는, 실제 자연사를 경험할 수 있는 책입니다. 그밖에 곤충학자이신 한영식 선생님이 쓴 <딱정벌레 왕국의 여행자>, <꿈틀꿈틀 곤충 왕국>, 그리고 김소희 선생님이 쓰신 <아zoo 특별한 동물별 이야기>가 있습니다. 청소년 책들이긴 한데, 아이들과 함께 과학에 접근하려고 할 때 부모와 아이가 같이 과학에 관심을 갖기 좋은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과학 이론이나, 수학은 자연사와 출발점이 조금 다르다고 볼 수 있는데요, 수학자들은 숫자 자체가 일종의 자연이라고 생각합니다. 수학적 재능은 자연사에서 발견될 수 있는 재능과는 조금 다르다고 봐요. 수학을 잘 하는 사람은 뇌구조도 다를 것 같습니다. 유전자도 다를 수 있고요. 하하. 수학파트와 관련해서 공부하는 것도 추천합니다. <수학의 파노라마>라는 책이 있어요. 그림과 사진을 보면서 수학이 무엇인지, 어디서부터 수학을 접하면 좋은지 영감을 주는 책이에요. 수학사를 다루고 있죠. 다른 수학책을 읽더라도 그 주제가 전체 수학사 중에 어떤 위치에 있는 것인지를 알려주는 책이라, 수학 분야 독서의 출발점으로 삼기 좋습니다.
과학사나 수학사 책을 읽는 것으로 전체적인 그림을 그리고 <코스모스> 같은 책을 중간에 읽어주시면 좋겠죠? 그리고 최고급 독자라면 "사이언스 클래식" 시리즈에 도전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두께가 어마어마하지만, 목침으로 삼을 수도 있는 장점이 있답니다. 도전해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