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르게세 미술관보르게세 미술관의 정면, 이탈리아 여행 중 첫번째 일정입니다.
박용은
그렇게 두근거리는 가슴을 안고 도착한 '보르게세 미술관'. 아직은 이른 시간이라 관람객이 그렇게 많지는 않았습니다. 미리 한국에서 예매를 해 두었기 때문에 티켓 교환만 하고 쉽게 입장할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나의 첫 이탈리아가 시작됐습니다.
보르게세 공원 안에 자리잡은 보르게세 미술관은 17세기 초 시피오네 보르게세 추기경의 주도로 만들어진 건물로 처음에는 보르게세 가문의 별궁으로 사용됐습니다. 19세기 후반 가문이 파산하자 이탈리아 정부가 공원과 미술관, 예술 작품을 몽땅 사들여서 오늘날의 보르게세 미술관을 만들었습니다.
내가 이 곳 보르게세 미술관을 얼마나 보고 싶어했는지... 사춘기 시절의 내 그리움 속에는 이 곳 보르게세 미술관이 숨어 있었습니다. 그 시절 읽은 범우사판 토마스 불빈치의 <그리스 로마 신화> 속에는 흑백 사진들이 있었습니다. 당연히 그리스 로마 신화와 관련된 그림과 사진으로 그 중에는 '아폴론과 다프네'의 조각상도 있었습니다. 아폴론의 치명적 사랑을 거부하다가 결국은 나무로 변해 가는 요정 다프네의 모습이 환상적으로 묘사되어 있는 조각 작품.
그런데 이번 여행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바로 그 '아폴론과 다프네'가 베르니니의 작품이고, 이 곳 보르게세 미술관에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실제로 볼 수 있을 것이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던 그 추억 속의 작품을 이번에 만날 수 있다는 생각에 목 뒷덜미에 소름이 돋았습니다.
바로 그 가슴 설레는 장소에 내가 서 있다는 사실만으로 또 온몸이 떨리더군요. 물품 보관소에 배낭을 맡기고 전시실로 향하는 발걸음마저 조심스러웠습니다. 그런데 그 조심스러운 발걸음은 곧 한 발자국도 움직일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바로 그 작품은
베르니니의 '페르세포네를 납치하는 하데스'였습니다.
역동적인 움직임과 사실적인 표정, 실물보다 더 실물같은 하데스의 근육과 탱탱하게 살아있는 페르세포네의 피부, 억센 하데스의 손가락에 눌려진 페르세포네의 부드러운 허벅지... 그것은 오래 전 서양미술사 공부를 하던 시절, 화보로만 봐 왔던 것과는 차원이 달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