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립 북서울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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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비츠는 '계급을 배신한' 예술가였다. 지금의 러시아 칼리닌그라드에 해당하는 동프로이센에서 유복한 중산층 가정의 딸로 태어났지만 노동자 등 어려운 사람들의 삶에 평생 주목했다. 목사였던 외할아버지와 사회주의에 몰입한 아버지에게서 소외계층을 향한 인간애와 사회적 책임감을 배웠다고 한다. 남편 칼 콜비츠도 베를린 노동자들을 돌보던 의사로서 아내의 헌신하는 삶에 동참했다.
콜비츠는 10대 시절부터 미술 수업을 받았고 '현대 독일 판화의 아버지'로 불리는 막스 클링거(1857~1920)의 작품에서 많은 영향을 받았는데, 초기 작품들은 대부분 노동자의 고단한 삶을 담은 것이었다.
이후 두 차례의 세계대전이 콜비츠의 작품에 큰 변화를 가져온다. 콜비츠는 1차대전에서 두 아들 중 둘째를, 2차대전에서는 손자를 잃었다. 전쟁과 절규, 죽음이 판화에 담기기 시작했다. 작품 속에 '고통으로 일그러진' 자신의 얼굴도 그려 넣었다.
300여 개 작품 중 자화상이 100개가 넘는데, 동시대의 수많은 부모, 조부모와 마찬가지로 사랑하는 자식과 손자를 잃은 비탄이 투영됐다. 콜비츠는 이것이 '시대정신의 반영'이라고 자신의 일기에 썼다. 콜비츠 자신도 '전쟁의 희생자'이자 '예술소재'였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