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사는 게 좋을 때만 있나요? 힘든 일이 생겨도, 저희 가게에 물건 사러 오는 손님들한테는 웃죠.
매거진군산 진정석
"손님 접대는 안 어려워요. 재밌어요. 물건 값 떼먹고 도망가는 경우가 힘들죠. 물건을 사가고 나서 법인을 없애 버리는 경우가 있어요. 법적으로 소송 걸어서 이것저것 처리하는데 시간이 오래 걸려요. 돌아오는 돈도 반절밖에 안 되고요. 30~40년 된 거래처한테 떼일 때도 있어요. 그 때는 소송 안 걸어요. 기다리고 봐요. 자기 사정 풀리면 주기도 하니까요. 사람 사는 게 좋을 때만 있나요? 힘들 때가 더 많죠. 어떤 사람들은 결제 안 해주면서도 계속 물건을 가져가요. 차라리 물건 가져가면서 얼굴 보는 게 나아요. 아예 그런 것도 안 하고, 연락도 끊어 버리면 너무 힘들잖아요. 그렇게 조심해도, 1년에 한두 번씩은 무조건 물건 값 떼먹히는 일이 생겨요. 결제 못 받는 게 3천만 원쯤 되는 시점에서, 어머니랑 의논해요."어머니는 수십 년 거래한 정이 있으니까 "조금만 더 믿어 보자"고 한다. 발등에 불이 떨어진 재경씨는 "멈춰야 돼요"라고 한다. 될 일은 되고, 터질 일은 터진다. 그래도 재경씨는 담담하게 웃는단다. 물건 사러 온 다른 손님들한테 처진 모습을 보여줄 수 없으니까. 털 수밖에 없다. 장사는 신용, 재경씨는 대출 받아서 자신의 거래처에 결제를 해준다.
재경씨네 가게에서는 못, 톱, 전기재료, 보일러, PVC, 수도 배관, 벽돌, 시멘트, 건설자재 등을 판다. 그는 더 좋은 물건에 대해서 항상 고민했다. 자동차용품점을 하는 한 후배가 중국제 물건을 쓰면서 "싼 것만 찾아서 그렇지. 중국 것도 비싼 건 다양하고 좋아요"라고 했다. 재경씨는 그때까지 상대조차 안 했던 중국 물건을 1년 넘게 탐색했다.
작년에 재경씨는 아버지, 철물점 직원과 함께 중국 광저우 '캔톤페어 박람회'에 갔다. 젊은 사람이 2박 3일간 쉴 새 없이 걸어야 다 볼 수 있을 만큼 박람회장은 넓었다. 신기한 물건이 많았다. '중국 물건은 후지다'는 생각, 한국에서 천 원 하는 물건을 중국에서 백 원에 사와서 그런 거였다. 5백 원짜리 중국 물건은 한국의 천 원짜리 물건보다 좋았다.
그는 정식으로 바이어 카드를 발급 받았다. 새의 이처럼 생긴 전지 가위, 세차할 때 쓰는 건(물총) 300개(단가가 높았음). 수도꼭지 뒤쪽으로 있는 선에 연장이 들어가기 힘든데 플라스틱 깍지가 달려 있어서 쉽게 끼우고 뺄 수 있는 호스 1만개, 전기선을 깔기 어려운 시골집 마당에 꽂아놓거나 설치하면 불이 들어오는 태양광 등을 계약, 직접 수입했다.
"철물점 하면서 늘 물건 연구를 하죠. 저는 이게 경쟁력이라고 봐요. 직접 가서 보고 가져온 물건을 파니까요. 비록 시골에 있는 가게지만, 좋은 물건 있다면 안 가리고 찾아가죠. 그렇게 물건 사와서 실패도 해요. 실패하면서 물건 보는 눈이 생기더라고요. 지금 제 관심사는 무선충전기예요. 중국은 이미 일상적으로 써요. 실내 인테리어 쪽도 관심 많고요."봄이 왔다. 철물점 일은 경기 영향을 받아서 아직 춥다. 어느 한 곳에서 결제가 안 되기 시작하면, 그 한 번으로 끝나지 않는다. 거래처들은 연달아서 물건 값을 갚지 못한다. 그는 "사는 게 그런 일들의 연속이죠"라고 하면서 다시 광저우 '켄톤 박람회' 얘기를 했다. 1년에 두 번 열리는 박람회. 올해는 언제쯤 갈 것인지, 그는 시기를 가늠하고 있다.
재경씨가 거래하는 곳은 군산, 익산, 전주를 넘어섰다. 제주도나 수도권까지 확장되어 있다. 작년에 열렸던 인천 아시안 게임, 재경씨는 요트 경기장 짓는 건설 현장에도 물건을 납품했다. 2년 전에 재경씨에게 철물점 일을 물려준 어머니는 날마다 가게에 나와서 일을 돕는다. 하루에 12시간에서 14시간씩 일하는 아들의 고된 일을 너무나도 잘 알기 때문이다.
"가끔씩 슬럼프 같은 게 와요. 뭘 하고 싶은지, 뭘 해야 좋을지 모르겠어요. 지금 하는 일의 의미를 못 찾을 때가 있어요."부모님 뜻을 헤아리며 순하게만 자란 청년 재경씨는 말했다. "이게, 뒤늦은 사춘기인가요?"라면서 웃었다. 가끔은 혼자서, 아무 생각도 안 하면서 있고 싶단다. 그러나 그의 머릿속에 꽉 찬 철물점 일은 절대 비워지지 않는다. 쉬운 인생은 없다. 재경씨 아내 은지씨도 연년생 딸 둘을 키우며 살림을 살고 있다. 힘들 때마다 진하게 커피를 마신다는 재경씨가 말했다.
"제 주장만 펴기가 어려워요. 저만 힘든 게 아니잖아요. 주위에 안 힘든 사람이 없거든요. 그러니까 그냥 철물점 일을 열심히 하게 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