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매매특별법 위헌심판 첫 공개변론 지난 9일 오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서 성매매 알선 등 행위의 처벌에 관한 법률(성매매 특별법) 위헌 여부를 가리는 공개 변론이 열렸다.
유성호
[판결 1] 혼인빙자간음죄 헌법 소원"지나씨, 나랑 결혼합시다. 제가 나이는 많지만 행복하게 해줄 자신 있어요."성기돈(가명)씨는 이지나(가명)씨에게 청혼을 했다. 두 사람은 사업 때문에 우연히 만났다. 성씨는 사업보다는 이씨에게 매달렸다. 그 때 성씨 나이가 50대 중반, 지나씨가 40대 초반이었다. 사랑 앞에 나이가 대수랴. 여기까진 별 문제가 없었다.
그런데 성씨는 20여 년 전 이미 결혼한 상태였고 2명의 자녀까지 있었다. 성씨는 재력을 과시하면서 환심을 사려고 애를 썼고, 사정을 모르는 지나씨는 청혼을 받아들였다. 그 후 두 사람은 수시로 잠자리를 같이 했다.
이것은 서막에 불과했다. 성씨는 지나씨를 통해 알게 된 친동생 지영(가명)씨에게 눈독을 들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몇 달 뒤 고백을 했다. "지영씨, 언니하고 나는 그냥 일 때문에 만나는 사이일 뿐이야. 난 지영씨밖에 없어. 나 믿지? 결혼하자. 외국 나가서 둘이만 살자. 사랑해." 성씨의 감언이설에 지영씨도 넘어가고 말았다. 이렇게 성씨는 자매를 번갈아 만나면서 잠자리를 함께 했다.
꼬리가 길면 밟히는 법. 두 자매는 성씨가 각자에게 구혼을 했다는 걸 알게 됐다. 뒤늦게 속은 걸 알게 된 두 사람은 배심감과 수치심에 치를 떨었다. 그리고 성씨를 형사 고소했다. 이때가 2008년이다. 성씨는 무슨 죄일까?
바로 혼인빙자간음죄다. '혼인을 빙자하거나 기타 위계로써 음행의 상습없는 부녀를 기망하여 간음한 자는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쉽게 말해, 여자에게 결혼하자고 꼬드겨 성 관계를 한 남성을 처벌하는 죄이다. 이 죄를 기준으로 보면 성씨는 두 여자를 농락했으니 죄질이 불량하다. 1심 법원은 2009년 성씨에게 징역 10월형을 선고하고 법정 구속했다.
성씨는 반성은커녕 억울함을 호소했다. 사랑이 죄란 말인가. 국가가 왜 성생활까지 개입하나. 성씨는 항소를 제기했다. 그리고 동시에 헌법 소원을 제기했다. 성씨의 행위는 적반하장일까, 아니면 정당한 권리 찾기일까.
2002년 헌재 "사회적 약자인 여성 보호 위해 필요"1953년 만들어진 혼인빙자간음죄는 여성 보호를 명목으로 40년 넘게 유지돼 왔다. 그런데도 헌법재판소는 2002년까지 "사회적 약자인 여성의 성적 자기 결정권을 보호하려는 정당한 목적"이 있기 때문에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그러나 자세히 살펴보면 이 죄는 문제 투성이다. 몇 가지만 들어볼까.
먼저, '음행의 상습 없는 부녀'만을 보호한다고 했다. 상습성은 누가 어떻게 판단하나. 또 음행의 상습 있는 여성은 왜 제외하나. 법으로 보호할 가치도 없다는 말인가. 둘째, 결혼하자고 꼬드겨야만 죄가 된다. 결혼 얘기만 안 하면 성 관계를 해도 죄가 안 된다. 결혼할 뜻이 있어서 잠자리를 했는데 나중에 마음이 바뀌면? 처벌을 면하려면 결혼해야 할까.
이래저래 너무 자의적이다. 셋째, 여자는 남자를 유혹해서 잠자리를 해도 죄가 되지 않는다. 이건 여성이 판단 능력이 떨어지거나, 여성의 '정조'만 보호해야 한다는 전제가 깔려야만 가능하다. 심하게 얘기하자면 남자의 '아랫도리'를 나라가 관리하겠다는 심사다. 한 마디로 국가의 '꼰대질'이다.
성기돈씨의 헌법소원으로 2009년 헌재는 또 다시 판단을 내린다. 성씨의 호소가 통했던 걸까. 이번에는 위헌으로 판명난다. '혼인빙자간음죄는 개인의 내밀한 성생활을 형사 처벌함으로써 남성의 성적 자기 결정권,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를 지나치게 제한했다'는 것이다.
2009년 헌재 "어떤 종류 사랑하건 개인의 자유 영역" 위헌 결정 헌재는 혼인빙자간음이 침해하는 기본권과, 지키고자 하는 공익 두 가지를 놓고 무게를 달아보니 기본권이 과도하게 침해됐다고 보았다. 성생활에 국가 개입을 억제하는 것이 현대 형법의 추세다. 예외적으로 성 문제에 폭력·강압 또는 거래가 동원되거나, 미성년자가 이용되거나, 전염병을 옮기거나 하는 반사회적 문제가 수반됐을 때 국가가 역할을 하면 된다. 원래 남성이 여성을 유혹할 때는 다양한 방법이 동원되고 그 과정에서 과장이 뒤따르기도 한다. 그런데도 결혼 문제가 개입됐다는 이유로 형법이 개입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헌재의 결정에는 "여성을 성적 의사 결정의 자유도 제대로 행사할 수 없는 존재로 비하하고 있으므로 남녀 평등의 원칙에 위배된다"고 의견을 낸 여성부의 전향적인 의견도 영향을 미쳤다. 지금은 결혼 때까지 정조를 지켜야 하는 조선 시대가 아니다. 헌재는 강압적 요인이 없는 성생활은 "여성 자신의 책임에 맡겨야 하고 형법이 개입할 분야가 아니"라고 했다. 아래는 헌재 결정 이유의 요지 일부분이다.
"성인이 어떤 종류의 성행위와 사랑을 하건, 그것은 원칙적으로 개인의 자유 영역에 속하고, 다만 그것이 외부에 표출되어 명백히 사회에 해악을 끼칠 때에만 법률이 이를 규제하면 충분하다."헌재의 위헌 결정이 내려지고 한 달 뒤 법원은 성씨에게 무죄 판결을 내린다. 자매를 농락한 성씨를 두둔할 사람은 없다. 이씨 자매가 받은 상처와 배신감도 형언할 수 없으리라. 그렇다고 국가가 나서서 성씨를 처벌해야 할까. 다시 강조하지만 성생활은 성인 남녀의 자유 의사에 맡겨야 한다. 자유로운 의사가 아니라고 판단되면 그 때 국가가 개입하는 게 맞다. 나머지는 도덕이나 민사상 손해 배상으로 해결해야 한다.
이번엔 군대로 눈을 돌려보자. 군기와 복무 규율, 명예를 중시하는 군대에서도 성적 자기 결정권이 인정되고 있을까. 육군사관학교에서 발생한 사건은 이 문제를 정면으로 건드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