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식원에 갔다가 대중목욕탕에서 만난 사람들의 말실수, 1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생생하게 기억이 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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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욕탕에 간 사람은 모두 8명이었다. 암 환자 3명, 당뇨병 환자 1명, 비만 때문에 살을 빼려고 온 여학생이 4명이었다. 이 모두가 단독으로 병을 앓고 있을 뿐 그 누구에게도 해를 끼치거나 피해를 주지 않는 사람들이다. 뿐만아니라 암 환자는 가장 깨끗한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다.
나를 포함한 우리 8명 중 유방을 절제한 2명은 아무리 아무렇지 않은 척 행동해도 스스로 위축이 되어 가슴을 가리고 욕탕으로 들어갔다. 눈은 발끝만 내려다보고 조심조심 몸을 다시 헹구고 욕조에 들어가서 냉·온욕을 하고 있는데, 손님 몇 명이 힐끗거리며 들으라는 듯이 나누는 말소리가 들렸다.
"이 목욕탕에 이젠 못 오겠다. 지난달에도 단식원 사람들이 왔기에 주인한테 못 오게 하라고 했는데 또 왔네.""그러게, 저 사람들 암 환자지? 아이 찝찝해.""얼른 씻고 나가자. 에이 기분 나빠."죄 진 것도 없건만, 우리 모두 그 소리를 들었건만, 아무도 그 말을 한 사람에게 따지지 않았다. 가슴이 아리고 쓰렸다. 다른 유방암 환자는 그만 눈물을 보이고 말았다. 나는 힘들어서 더 이상 못하겠다는 핑계를 대고 먼저 욕조에서 나왔다. 당뇨병을 앓는 사람도 눈치를 채고 따라 나왔다. 우리 둘은 아랫도리만 입고 어깨에 수건을 걸치고 그 사람들을 기다렸다. 조금 있다가 그 사람들이 나왔다. 두 명이었다. 내가 먼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안녕하세요? 아까 두 분이 하는 얘기를 들었네요."나는 어깨에 걸쳤던 수건을 벗고 그 사람들 쪽으로 가슴을 돌렸다. 당뇨 여인도 어깨의 수건을 벗었다.
"보시다시피 저는 유방암 환자고, 이 분은 당뇨가 있어서 이곳에 오게 됐어요. 아주머니들이 어떻게 알고 계시는지는 모르겠지만 암은 전염병이 아닙니다. 당뇨병 역시 전염병이 아닙니다. 그리고 암 환자만큼 깨끗한 사람도 드물 겁니다. 암 환자는 면역력이 떨어져서 약하기 때문에 조금만 지저분해도, 나쁜 음식을 먹어도 안 됩니다. 그러니까 대체적으로 일반인들보다 훨씬 깨끗하다고요.""…….""아까 찝찝하다, 기분 나쁘다고 하셨지요? 왜 기분이 나쁘며 뭐가 찝찝한가요?"그렇게 말을 하는데 나도 몰래 주책없이 눈물이 마구 쏟아졌다. 그제야 아주머니들은 당황해 하며 미안하다고 사과를 했다.
암환자, '나와는 다른 고통 겪는 사람'으로 생각해줬으면그날 저녁, 멀건 된장국물을 한 대접씩 마시고 우리는 한 자리에 모여서 낮에 목욕탕에서 있었던 일에 대해 많은 얘기를 나누었다. 별꼴이라고 일축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분해 하는 사람도 있었다. 특히 다이어트를 위해서 온 4명의 학생들은 억울하다고 했다. 그 학생들은 모두 고등학생이었는데 처음 볼 때는 데면데면하더니 내 어깨에 손을 얹고 위로를 하기도 하고, 역성을 들며 함께 아파해 주기도 했다. 내가 아파서 불쌍하다는 생각을 처음으로 했다.
일 년이 지난 지금도 비슷한 상황을 목격하거나 겪었을 때, 그 일이 생생하게 기억나는 것은, 그만큼 상처를 많이 받았다는 것이다. 말하는 사람은 무심코 했겠지만, '무심코 던진 돌에 개구리는 맞아서 죽는다'.
축령산 편백림에 환자가 많아서 찝찝하다는 사람도, 환자와 함께 목욕을 해서 찝찝하다는 사람도 악의는 없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믿고 싶다. 그러나 앞으로는 암 환자를 볼 때 환자로 보지 말고 '나와는 다른 고통을 겪고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해 주면 참 좋겠다.
○ 편집ㅣ최유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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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환자지? 찝찝하게..." 목욕탕서 왈칵 눈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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