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의 불화 초래할 결혼식, 어떻게 할래?

[전세계를 돌아다니는 유목민 이야기] 삶의 방식을 바꿔준 결혼식

등록 2015.04.08 16:45수정 2015.04.08 16: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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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결혼 초대장 사진

결혼 초대장 사진 ⓒ 김태균


평소 결혼에 대한 생각이 없었고 내가 하고 있는 국제구호활동 현장에서 사람들과 함께 살다 죽는 것이 참 보람되겠다는 생각만 갖고 있었다. 30대가 되어 갑자기 나타난 소울메이트와의 만남은 결혼이라는 것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만드는 계기가 됐다.


원래 결혼이란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동반자가 되어 함께 반평생을 사는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가족들의 동의를 구하고 결혼식이라는 의식을 거쳐야 하는 등 함께 사는데 필요한 핵심적 가치보다는 곁가지들 준비에 힘을 다 소진할 듯 싶었다. 과연 난 결혼을 어떻게 할 것인가?

서로 기존에 했던 일들을 다 정리하고 함께 산속에서 새롭게 시작하자고 했으나, 우선 부모님께 어떻게 이야기를 꺼내야할지 고민이 되었다. 과거 난 내가 하고자하는 일은 부모님의 반대에도 하는 성격이기에, 내다 놓은 자식이 되었지만 결혼만큼은 인생에 있어 중요한 결정인만큼 부모님이 호락호락하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각자 가족과의 상견례를 준비하여 만났으나 우려와는 달리 양가 가족이 우리가 함께 사는 것에 대해 반대하지 않았다. 10여년 동안 주변의 반대에도 한 길을 갔던 서로의 경험 때문인지, 가족들이 우리를 지켜만 보고 별말씀을 안 하는 게 참 신기했다.

그만큼 신뢰가 쌓인 것인지 이 사람이 아니면 딸내미나 아들내미 성격을 상대할 사람이 없을 거라 생각하신 것인지 모르겠다. 우리의 결혼은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우린 각자 가족의 집에서 안 쓰는 그릇, 수저, 식탁 등과 옷가지들을 트럭에 싣어 가족들에게 손을 흔들며 산골로 들어왔다.  

a  가족들과 결혼식 축배

가족들과 결혼식 축배 ⓒ 한지영


우리가 1주일 동안 야영하면서 찾은 산골 빈집에 설레는 마음으로 살림살이를 정리하다가, 이곳에 우리만 살고 있다는 게 신기하여 산을 향하여 '야호'를 몇 번씩이고 외쳤다. 산울림과 새소리 그리고 두둥실 떠다니는 구름들... 마치 신선의 세계에 살고 있는 듯한 느낌이었지만 곧이어 결혼식을 어떻게 해야하나라는 물음이 머릿속에 맴돌았다.


며칠동안 텃밭을 일구어 모종을 심다가 내 생일날 결혼식을 시작하여 1년 동안 결혼을 축하하러 오시고 싶은 분들을 초대하는 것은 어떨까? 예전부터 아버지가 딸의 손을 잡고 들어가 사위에게 그 손을 넘겨주는 건 가부장적이라 생각했고, 서구식 웨딩드레스를 입는 것에 대해 마음이 편치 않았던 터라 웨딩홀에서 결혼할 마음이 없었다.

그리고 오랜만에 지인들을 만나는 자리가 함께 삶을 이야기하고 결혼에 대한 조언을 듣는 자리가 아닌, 축의금 받고 식사만 하는 자리가 되는 것도 불편했다. 지인들도 원하는 시간에 오랜만에 자연 속에서 쉬면서 삶에 대해 노래하고 우리가 손수 가꾼 야채로 만든 식사를 하면 의미있는 결혼식이 될 거 같았다. 이런 생각을 하다보니, 마음이 한결 가벼웠다. 그리고 1년 동안 동반자와 함께 어떻게 살지 공부하며 우리가 좋아하는 결혼여행을 시작하는 것이다.


여기까지는 동반자와 논의해서 문제들을 해결해나가면 되기에 마음을 모으는게 쉬었지만, 결혼식은 우리나라의 관습과 부딪히는 문제이기에 가족들과 친인척들에게 이야기하는 게 관건이었다. 어머미는 "웨딩드레스를 입지 않으면 평생  후회할 수도 있을 텐데 아쉽지 않겠냐"며 안타까워 하셨지만, "나중에 오빠가 결혼할 때 하고 싶어지면 같이 하라"며 별말씀을 안 하셨다.

하지만 시댁과의 문제풀이는 또다른 관건이었다. 문제의 핵심은 타인의 시선과 그동안 낸 축의금이었다. 관습은 계속 이어서 내려오기 때문에 누군가 손해를 보고 끊지 않는 한 계속되는 게 아닐까 싶다. 타인의 시선이나 비난에서 벗어나 내가 하고자 하는대로 나아가기란 쉽지 않지만 정말 그게 더 나은 방향으로 가는 길이라면 부딪힘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남편은 가족들과 몇 주 동안 힘겨운 논란을 벌였고, 결국 동의를 얻어내 내 생일날 결혼식을 시작할 수 있었다. 양가 가족들과 산속에서 다 같이 '님과 함께'를 부르며 활짝 핀 내 마음과 함께 드디어 결혼의 장을 열었다.

1년 동안 거행된 산속에서의 결혼식은 전세계를 돌아다니면서 노마드 가족으로 살아갈 수 있는 다양한 방법에 대해서 공부하고 서로의 차이를 통해 함께 살아가는 방법을 찾아가는 초석이 되었다.
#결혼 #결혼식 #공유 #대안적인 결혼 #유목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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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과 탐험을 좋아하고 현재 덴마크 교사공동체에서 살고 있는 기발한 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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