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대학 다닐 때에 알바한 돈으로 커피를 배웠다. 취미로 시작한 일을 직업으로 삼았다.
매거진군산 진정석
지난해 2월, 경남씨는 대학을 졸업했다. 커피를 공부해 본 적 없는 선배가 차린, 광주의 한 카페에서 일했다. 새로 레시피를 짜고, 카페 운영을 도왔다. 숱한 카페 알바를 하면서 '내 카페를 하면, 어떻게 할까' 자주 생각했던 게 도움이 됐다. 선배네 카페는 빠르게 자리 잡았다. 쉬는 날도 없이, 하루에 10시간 넘게 일하면서 경남씨의 몸과 마음은 생기를 잃어갔다.
그가 보는 세상은 카페 안이 전부였다. '대학 졸업했는데 이렇게 알바로 사는 게 맞나?' 생각했다. 학교 다니면서, 알바 하면서, 커피 배우러 다닐 때도 활력이 있던 그였다. 2시간짜리 커피 강의를 들으러 수십 차례 서울을 오갈 때도 회의에 빠지지 않던 경남씨. 모텔(원룸과 월세가 같지만 관리비를 내지 않는 장점이 있음)에서 사느라 더 지쳤을 수도 있다.
"커피를 본격적으로 하면서는 부모님한테 손을 벌리기가 싫었어요. 절약을 많이 할 수밖에 없었어요. 언제까지 알바로 살 수는 없으니까요. 가끔 친구들이랑 고민 얘기하면서 술은 마셨죠. 제 옷을 사거나 먹고 싶은 것을 사 먹은 적은 없어요. 그런 욕망은 누르는 게 당연하죠. 생활비도 감당하고, 월세도 내고, 돈도 모아야 하니까요." 익산 특수교육센터에서 아이들과 '커피공부'지난해 4월, 여전히 카페 알바로 일하고 있었던 경남씨는 익산 특수교육지원센터의 바리스타 강사에 지원했다. 일주일에 두 번씩 광주에서 익산을 오갔다. 길에서 흘려보내는 시간이 많았다. 돈을 벌 수 없는 재능기부. 그의 고민은 많지 않았다. 딱 한 가지, 지적장애가 있는 중고등학생 아이들에게 뭔가를 전달해 준 경험이 없다는 게 걸렸다.
처음에는 긴장해서 온 몸에 힘이 들어갔다. 열 명이 넘는 장애 아이들과 하는 커피 수업, 경남씨는 '이게 맞는 건가? 잘하고 있는 건가?' 생각하느라 아이들한테 성큼 다가서지 못했다. 아이들이 먼저 다가왔다. 눈을 반짝이면서 커피를 볶고 드립 커피를 배우는 그 애들의 모습 자체가 감동이었다. 한 학기를 마쳐갈 때쯤에는 바리스타가 꿈인 아이도 나왔다.
"커피는 누구나 배울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아이들이 완벽하게 커피를 습득하는 것보다는 체험하는 데에 중점을 두고 했어요. 애들이 신기해하면서 따라 하더라고요. 제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잘 따라왔어요. 수업 끝나고 함께 커피를 마시면, 쓰다고도 하고, 맛있다고도 하고, 설탕 타서 마신다고도 해요. 각자 취향이 있어서 다양한 반응을 보이는 거예요."경남씨가 광주의 카페에서 일하고, 익산의 특수교육센터에서 아이들과 커피 공부를 하는 사이에 여름이 왔다. 그는 아예 짐을 꾸려서 고향 군산으로 왔다. 모아놓은 돈은 뻔했지만 조그마한 카페를 열고 싶었다. "해 봤자 금방 망해"라는 말보다는, 놀랄 만큼 비싼 임대료가 경남씨를 뒤흔들었다. 그래도 아이들한테 커피 가르치려고 익산의 특수교육센터에 다녔다.
큰 위험을 안고 시작하는 카페는 불안하다. 경남씨는 유동인구가 어느 정도 있고, 가게 월세도 감당할 수 있을 만한 자리를 찾아다녔다. 군산 수송동 어느 뒷골목의 20평짜리 가게, 창업대출을 받은 경남씨의 카페가 되었다. 깊어가는 가을에 그는 혼자서 인테리어 공사를 했다. 한 달 동안. 커피 교육에 치중하고 싶어서 테이블 두 개에 바 테이블 한 개만 들였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저는 커피 맛부터 완벽하게 잡고 싶었어요. 커피 머신을 새로 들였잖아요. 알바하면서 써 봤거나 배운 기계와는 다른 거니까 파악하는 데 시간이 필요했어요. 로스터기도 처음 쓰는 거라서 콩을 제대로 못 볶으면 커피 맛을 버리게 되고요. 처음에는 원하는 맛이 안 나오더라고요. 맛이 들쭉날쭉해서 실패를 많이 했죠. 콩을 많이 버렸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