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성장 천막과 현수막대학교수와 학생들에 의해 찢겨진 현수막이 많이 있었습니다.
변창기
천막은 튼튼하게 잘 만들어져 있었습니다. 누가 설치해 준 것이냐고 물어보니 플랜트 노조에서 만들어 준 것이라 했습니다. 안으로 들어서니 다른 청소노동자들도 저를 반갑게 맞아 주었습니다.
김순자 지부장과 몇몇 조합원이 천막을 지키고 있었습니다. 대부분 손자를 품에 안을 나이가 되신 분들 같았습니다. 그 분들은 저에게 저녁을 먹었는지부터 물었습니다. 안 먹었다고 하니, 간단히 저녁을 차려주시더군요. 저녁을 먹고 그분들과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지난해엔 본관 안에 있었는데 왜 밖에 천막을 치고 있냐고 물어봤습니다.
"말도마예. 우리가 지난해 6월 16일부터 파업을 시작했지예. 파업하면서 바로 본관을 점거해버렸지예. 우리는 최저 시급 받고 일 몬하겠다꼬, 생활 임금을 달라고 이러고 있으니까 금방 끝날 줄 알았어예. 10년, 20년 다녔는데도 아직 최저 시급이 말이 되는교. 집에서 다 어렵게 사는 사람들인데 먹고 살게는 해줘야 보람된 직장으로 알고 열심히 일하잖아예. 전국에서 많은 분이 도와 주셔서 잘 버티고 있었는데 고마 지난해(2014년 10월 20일 아침 6시께) 법원 집달관하고 교수들이 우르르 와서 그대로 덜렁 들어밖으로 내동댕이 쳤어예. 부아가 치밀어 되겠심니꺼. 그래서 여기에 다시 천막치고 이렇게 노숙 농성하고 있는기지예."지부장님은 지난
3일 다시 기막힌 일이 벌어졌다며 휴대폰으로 찍은 동영상을 보여줬습니다. 옆에 있던 조합원이 이야기를 돕습니다.
"저번엔 교수들이 나서서 그러더니 이번엔 학생들이 나서서 이러네요. 부모 같은 사람들이 생계비 좀 올려달라고 이러고 있는데 자식 같은 학생들마저 이러니 참 서글프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어떤 학생에 물어보니 리본 철거하는데 함께하면 학점 올려준다고 그랬다고 하대요. 그런 미끼를 던지니 학생들이 그렇게 많이 동원할 수 있었던 거 같아요."동영상을 보니, 여러 명의 남녀 학생이 나무에 달린 리본을 뜯어내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동영상을 찍던 분이 인터넷에 올릴 것이라고 경고를 주는 데도 아랑곳 않고 철거를 이어갔습니다. 울산과학대 남녀 학생들은 청소노동자의 항의에도 그렇게 1시간 가량 철거 작업을 한 후 자진 해산했다고 합니다.
청소노동자들의 주장에 대해 울산과학대 관계자는 7일 <오마이뉴스>와 한 통화에서 "(학생들에게 현수막 철거를 하면 학점을 주겠다고 한 건)사실 무근이다"라며 "(3일 발생한 일에 대해)따로 조치한 바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울산과학대학교는 울산시 동구에 위치한 대학교로 울산공업학원에서 운영하고 있습니다. 울산공업학원은 현대자동차와 현대중공업을 설립한 정주영 전 명예회장이 세운 것입니다. 지난해 11월 3일 울산지법은 한 달 전인 10월 8일 학교측이 낸 '퇴거단행 및 업무방해금지 가처분'을 받아들여, 농성중인 청소노동자 16명에게 각각 330만 원씩(11일분)의 강제이행금을 부과했습니다. 현재 노동자들의 통장은 압류된 상태입니다. 그럼에도 그들은 파업과 노숙 농성을 포기할 수 없다고 합니다. 한 분이 말씀하셨습니다.
"정부가 청소 용역에게 주는 시중 노임 단가가 시급 7915원인데 우리 울산과학대 청소 노동자는 지난해 최저 시급인 5210원 받고 있습니다. 그것도 10년 이상 건물 곳곳을 쓸고 닦고 청소를 해오고 있는 사람에게요.억울하게도 오히려 학교에서 업무 방해를 들어 가처분 신청을 했어요. 지금 우리는 농성장 철거를 당했고요. 1인당 330만 원을 내야 할 처지가 됐어요. 심지어 지금 단전·단수에다 화장실까지 사용하지 못하게 막고 있습니다."그날 저녁 이야기를 오래 하다 보니 화장실이 가고 싶어졌습니다. 노숙 농성 하는 분들은 "자기들만 못 가게 하지, 외부인은 가도 된다"며 안내해줬습니다. 화장실 다녀오니 노동자분들은 계란을 먹으라며 제게 건넸습니다. 민중 교회로 이름난 등대교회에서 부활절이라고 삶은 계란과 음료수를 주고 갔다고 합니다. 배가 불렀지만, 성의를 받아 한 개 까먹었습니다. 그 후 밤이 깊어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노조원이 제 잠자리를 만들어 주었습니다. 바닥은 따스했습니다. 잠자리에 누우니 발전기 돌아가는 소리가 시끄럽게 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