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시케시 갠지스 강가를 따라가면 나오는 폭포.
Dustin Burnett
"안 갈래."요가 아쉬람을 둘러보자는 내 제안을 더스틴이 뚝 잘라 거절했다.
"싫어? 그럼 밥이나 먹으러 가.""안 먹어.""뭐야. 계속 방에만 있을 거야?""속도 안 좋고. 그냥 여기 분위기가 싫어. 너 혼자 다녀와."김새는 더스틴의 태도는 며칠 동안 계속됐다. 어두침침한 방 안 침대에 눌어붙어 하루를 보낸 더스틴은 다음 날도, 그 다음 날도 숙소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탈이 났다는 핑계로 밥도 먹지 않고, 인도 햇살에 무르익은 다디단 망고를 손수 깎아준대도 거절했다. 더스틴은 방문을 꼭 닫고 리시케시를, 인도를, 요가를, 명상을 온몸으로 거부했다.
싫다는데 할 수 없지. 나는 홀로 강가를 어슬렁댔다. 리시케시라는 도시는 수십 개의 아쉬람과 여행자 카페, 수백 명의 인도 순례객, 그리고 서양 여행자로 이뤄진 곳이었다. 하루는 이런 식이었다. 힌두 사원 주변을 가득 메운 인도 순례객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 강가로 빠져나왔다. 인도인이라곤 단 한 명도 보이지 않는 여행자 카페에 앉아 익숙한 팬케이크와 커피로 아침을 시작했다.
레게머리, 문신, 피어싱으로 온몸을 치장한 서양 여행자 사이에서 강가를 어슬렁대다, 마을 중심에서 십분 정도 걸어가면 나오는 부다 어쩌고 인지 몽키 어쩌고 인지 하는 카페의 '어메이징'한 바나나 스무디에 관한 대화를 엿들었다. 가이드북이 소개하는 유명 아쉬람 몇 개를 어슬렁대다, 좀처럼 마음을 잡지 못하고 어둑한 숙소 안에 틀어박힌 더스틴에게로 귀환했다.
"요가가 싫으면 나가서 밥이라도 먹어. 굶어 죽을 거야?""안 나가.""왜?""여기 분위기 자체가 싫어. 가식적이야. 여행자들도 허세 투성이야.""뭐가 가식적인데?""안 보여? 저 '히피'들? 아니 가짜 히피들. 리시케시 강변에 앉아 눈을 감고 있다고 해서, 아쉬람에서 명상 며칠 했다고 해서 자기는 다르다고 생각하는 얼치기들." 그런가? 그렇다고 하니 그런 것 같기도 하다. 애초에 줏대없는 나다. 카페에 반쯤 누운 듯 앉아 인도 음식에서 일본, 이스라엘, 멕시칸 음식을 총괄하는 30페이지가 넘는 메뉴를 훑어보며 시간을 보내는 여행자들. 어디서 왔느냐고 물었더니 '지구라는 별에서 왔다'는 대답으로 나를 멍하게 만들었던 남자. 나사 풀린 표정으로 느릿하게 걸으며, 느릿한 말투로 한다는 말은 "I don't care". 리시케시에만 오면 자아를 엿보기라도 할 줄 알았는데. 더스틴의 말 한 마디에 리시케시가 헷갈리기 시작했다.
"너 그러다 비타민 결핍으로 등이 굽어 버릴걸."더스틴은 어둑한 방에 틀어박혀 햇볕 한 번 안 본채 닷새라는 시간을 흘려보냈다. 이대로 있다간 한 달이고, 반년이고 방에 처박힐 기세다. 나는 이어폰을 꽂고 침대에 늘어져 있는 더스틴의 손을 끌고 거리로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