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까 봤던 귀여운 양즉석에서 양 한마리 잡는 키르기스스탄 소풍법
정효정
이야기를 들어보니 키르기스스탄에서는 양을 잘 잡는 남자가 인기라고 했다. 할아버지와 할머니들은 내게 멋있는 키르기스스탄 남편을 소개해주겠다며 중매에 나섰다. 멋있는 남편은 좋긴 한데... 하지만 이 멋진 남편이 양의 목을 치고, 내가 옆에서 내장과 지방을 분리하는 상상을 해보았다. 아무래도 아닌 것 같다. 고기는 마트에서 곱게 포장된 것으로 사먹고 싶다. 그래도 그날 그곳에서 먹은 양 요리는 다 맛있었다.
70세 남편, 그리고 한 여인의 운명 늘 지금 시대에 태어나서 행운이라고 생각한다. 수세식 화장실을 쓸 수 있고, 페이스북으로 귀여운 동물 사진을 실시간으로 볼 수도 있다. 그리고 내가 선택한 사람과 결혼을 할 수 있다는 것도 이 시대의 장점 중 하나다.
그러다보니 동서고금의 옛 이야기 속엔 항상 슬픈 신랑, 신부들 이야기가 항상 등장했다. 떠밀려서 결혼했더니 신부가 박색이라거나, 신랑이 제 구실을 못한다거나... 심지어 떠밀려서 결혼했더니 남편이 백발노인에, 말도 안 통하고, 씻을 물도 없고, 집도 없이 천막생활을 해야 하는 경우도 있었다. 이 기막힌 이야기의 주인공은 유세군. 그녀는 기원전 2세기 한나라에 살았다.
키르기스스탄 일대는 오손이라고 불리던 나라에 속했다. 오손은 장건이 한무제의 명을 받고 동맹을 맺기 위해 찾은 나라다. 흉노가 트라우마였던 한무제는 오손과 화친을 맺기 위해 한의 공주를 오손에 보내기로 한다. 그는 자신의 딸이 아닌 조카 유건의 딸을 오손에 시집보낸다. 강도지역의 제후였던 유건은 역모에 연루되어 자결하고, 그 딸은 의지할 곳 없이 한의 궁궐구석에서 지내던 터였다. 그 딸이 유세군이다.
우리에게 이 이름이 익숙한 이유는 훗날 그녀가 남긴 시 한 수 때문이다. 유명한 '오손공주비수가(烏孫公主悲愁歌)'다.
吾家嫁我兮天一方 나의 집안은 나를 하늘 저편으로 시집보내니 遠託異國兮烏孫王 멀리 이국의 오손왕에게 맡겨졌네 窮廬爲室兮氈爲墻 둥근 천막으로 방을 삼고 양털로 담을 쌓고 以肉爲食兮酪爲奬 고기가 밥이 되고, 삭힌 젖을 마신다네 居常土思兮心內傷 늘 고향을 생각하며 마음이 슬픔으로 가득차니 願爲黃鵠兮歸故鄕 한 마리 고니가 되어 고향으로 돌아갔으면 기원전 105년. 당시 서역으로 떠났던 그녀 나이 스물 다섯 살이었다. 장안에서 꽃처럼 살던 아가씨가 졸지에 유목생활을 해야 하는 심정이 어땠을까. 이미 식문화가 발달했던 한나라에 비해 유목국가인 오손은 주식이 양고기와 말젖을 발효시킨 시큼한 크므스다. 거기다 남편은 이미 거동조차 자유롭지 않은 고령이다. 시를 읽는 것만으로도 속이 썩어 문드러질 듯한 그녀의 심정이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