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미네(수원 공공미술관 이름 바로잡기 시민네트워크)가 출범했다.
유혜준
- 수미네(수원 공공미술관 이름 바로잡기 시민 네트워크) 출범 기자회견을 하고 딱 하루 만에 수원시에서 명칭을 확정하겠다고 나섰습니다. 무시당한 느낌일 것 같은데요.
"25일 저녁에 어느 인터넷 매체 기자가 전화를 해서 알려주더군요. 오전 정례 브리핑 때 보니 시의 관계자들이 제 동향 자료를 갖고 있더라구요. 저와 수미네가 어떻게 움직인다는 걸 뻔히 알고 있었으면, 전화라도 한 통화 미리 해 주는 게 예의 아니겠습니까?
하지만 말 한 마디 없었습니다. 아예 싹 무시하기로 결정했다는 얘기지요. 순간적으로 속에서 뭔가 욱 하고 치밀어 오른 게 사실입니다. 그런데 다시 생각해보니, 수원시로부터 무시당한 게 이번이 처음이 아닌 데다 예상하고 있던 시나리오이기도 해서 괜히 헛힘 빼지 말자고 마음 추스르고 나니 편해졌습니다. 우리끼리 웃으면서 포럼 뒤풀이를 했습니다."
- 수원시립 아이파크 미술관 이름을 반대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제가 세 가지 명칭을 예시해 보지요. 첫째, 수원시립 미술관 행궁의 뜰, 둘째, 수원시립 현대산업개발 미술관, 셋째, 수원시립 아이파크 미술관. 어느 게 가장 마음에 드십니까?
사실 세 이름 모두 문제가 있지요. 첫 번째 것은 수미네의 전신 격인 수미사(수원시민미술관을 고민하는 사람들)가 시민공모를 해서 상당히 호응을 받은 이름입니다. 하지만 이 이름은 모든 시민들의 의사를 공개적으로 물어 결정한 이름이 아니라는 점에서 문제가 있지요.
두 번째 명칭은 그래도 세 번째 것보다 낫지 않습니까? 시가 선경도서관이라든가 SK아트리움 같은 선례를 자꾸 들먹이니까 그저 생각해 본 겁니다. 물론 수미네는 이런 이름에도 반대합니다. 하지만 현대산업개발이라는 기업명을 전면에 내세운 게 아이파크라는 아파트 브랜드를 정면으로 내세운 것보다는 훨씬 정직해 보입니다.
아이파크는 예술과 전혀 무관한 상표일 뿐입니다. 이를 앞세운다는 건 300억 원이나 대고 미술관을 기부채납하겠다는 기업의 선의마저 의심하게 합니다. 그것도 화성과 화성행궁이라는 세계문화유산이자 수원의 역사이자 상징인 공간에 대한 예의가 아니지요.
아이파크 미술관이라는 명칭은 듣자마자 '우리가 거액을 내니까 큼지막한 홍보 수단을 다오'라는 계산이 확 느껴지지 않습니까? 수미네도 현대산업개발이 거액을 들여 미술관 지어 기부채납했다는 사실을 아예 알리지 말라는 게 아닙니다. 표지석도 좋고, 동판도 좋다 이겁니다. 단지, 계산속이 뻔한 광고용 명칭을 쓰지 말라는 겁니다.
입만 열면 정조대왕을 입에 올리는 수원시가 이런 간단한 사리조차 헤아리지 못했다는 게 한심합니다. 이름 결정 과정을 투명하게 공개하지 못하는 수원시의 입장을 도무지 이해하지 못 하겠습니다."
- 염태영 수원시장은 기부문화 확산을 위해 '아이파크 미술관'을 명칭을 정했다고 합니다.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기부문화를 확산시키려고 뛰어다니는 시장의 노고를 모르는 것도 아니고, 업적을 깎아내릴 생각도 없습니다. 오히려 앞으로도 기부문화를 확산시켜달라고 부탁하고 싶어요. 다만 이런 식으로 기업과 거래하듯 하지 말고, 문화는 문화로 존중하면서, 투명하게 하시라 이거예요. 시민운동 출신 시장은 그래야 하는 거 아닙니까? 기업과 흥정하듯 하는 시장은 누구나 할 수 있지요."
"자본의 힘이 공공성 누른 상징적 사건"- 공공미술관에 기업 이름이 들어간 것은 수원시립미술관이 우리나라에서 처음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자본의 논리가 우리 삶 구석구석을 장악해나가고 있다는 건 삼척동자도 아는 얘기지요. 문화가 자본의 논리에 침식되다 못해 종속 상태에 들어갔다는 사실 역시 두 말하면 입 아프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이처럼 노골적으로 상품명을 앞세운 공공 미술관이 없었다는 건 그래도 자본과 문화 사이에 지켜야 할 금도라는 게 있는 게 아니냐는 의식이 조금은 남아 있었기 때문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게 이번에 적나라하게 무너진 겁니다.
자본의 힘, 돈의 위력이면 문화고 공공성이고 다 필요 없다는 걸 상징적으로 보여줬다고나 할까요? 자칭 문화도시, 인문학도시를 내세우는 수원에서 이런 선례, 안 써도 되는 새 역사를 썼다는 게 무참합니다. 그래서 반대운동을 하는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