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재판 중인 천종호 부장판사. 천 판사는 '호통판사', '천10호'로도 불린다. 엇나간 소년범들과 보호자들에겐 호통을 치고, 엄벌인 '10호 처분'을 내리기 때문에 붙여진 별칭이다.
천종호
- 법관들이 기피하는 소년재판을 6년째 전담하고 있는데 그 이유가 무언가. "나의 아버지는 가난한 목수였다. 아버지의 일이 끊기면 끼니도 때우기 힘들었다. 목수의 아들이 판사가 되고 싶었던 것은 가난의 억울함을 벗고 싶어서였다. 가난하다는 이유만으로 수치심을 당하고, 억울함을 당해도 호소조차 못하는 이웃 속에서 자랐다. 미련할 정도로 악착같이 고시공부를 한 것은 아버지와 같은 약자를 돕고 싶어서였다. 그런데 판사가 되자마자 다 잊어버렸다.
돈 잘 버는 변호사가 되기 위해 인맥을 쌓으려 했고, 술자리를 쫓아다녔다. 그러다 소년재판을 맡으면서 고시생 시절의 다짐이 생각났다. 소년전담판사가 된 것을 하늘의 뜻이라고 생각한다. 한 아이의 일생을 좌우하는 판사보다 더 귀한 일이 있을까 싶다. 그래서 퇴임할 때까지 소년판사, 만사소년이고 싶다."
- 천 판사의 소년재판은 다른 판사의 재판과 아주 다르다. 호통을 치기도 하고, 용서와 사랑을 외치게도 한다. 효과가 얼마나 있나."법정은 법을 집행하는 엄숙하고 신성한 공간이다. 그런 소년법정에서 그런 퍼포먼스를 연출하는 목적은 재범 방지와 사회 해악을 줄이기 위함이다. 엄벌만으론 재범을 막기가 어렵다는 것을 역사와 통계가 증명하고 있다. 자신의 죄를 뉘우치는 아이의 눈물, 자녀의 눈물을 닦아주며 부모의 잘못을 고백하는 법정은 엄벌의 장소를 넘어 용서와 관용, 희망을 일궈내는 장소가 되고 있다. 효과가 아주 크다."
- 소년판사의 보람은 무엇인가?"판사는 잘못을 저지른 아이들이 마지막에 만나는 어른이다. 위기청소년들은 판사 앞에 서면 단단히 주눅 든다. 그런 아이들의 마음을 알아주면 아이들의 눈빛이 달라진다. 임신한 소녀에게 배냇저고리를 사주고, 절도로 붙잡힌 아이에게 지갑에 돈을 넣어 선물한 적이 있다. 남의 물건에 손대지 말고 돈이 필요하면 연락하라고 했더니 눈물을 흘렸다.
한 소녀가 있었다. 음주와 흡연, 성매매와 자해로 자신의 몸을 망치다 재판을 받게 된 아이였다. 그 아이에게 소원을 물었더니 '한 끼니라도 좋으니 온 가족이 모여 밥을 먹는 것'이라고 했다. 이 아이가 방황할 때, 죽고 싶을 만큼 힘들 때, 가족의 정이 그리울 때 우리는 따뜻한 말 한마디 해주지 않았고, 손 한번 잡아주지 못했다. 그 아이는 재판을 받는 내내 "죄송합니다!"라고 말했는데 용서를 빌 사람은 소년범이 아니라 우리 어른이었다. 그래서 내가 "아니다, 오히려 우리가 미안하다"고 사과했다. 그 소녀도 울고, 법정 사람들도 울었다."
- 소년재판의 어려움은 무엇인가"일반 청소년뿐 아니라 위기청소년도 우리의 미래다. 소년재판을 받는 아이들에게도, 강연장과 언론 등에서 만나는 어른들에게도 절대 포기하지 말라고 호소하는 이유다. 미래가 없는 사회에 희망이 있겠나. 그런데 현실은 암담하다.
한 소년의 재판에 소요되는 시간은 10분 가량이다. 사건이 많으면 3~4분가량으로 줄어든다. 3~4분이면 컵라면 하나 익히는 시간이다. 한 소년의 미래가 결정되는 중대한 재판을 컵라면 익히는 것처럼 급속처리 하는 것은 괴로운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