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살기 위한' 자유의 포기박정희 시대는 '잘 살기 위해' 무엇이든 합리화할 수 있는 조건이 만들어졌다. 자유는 연탄가스처럼 위험한 것이어서 '제한'해야 한다는 내용의 유신 홍보물.
민족문제연구소 자료제공
25일 모교를 찾은 김무성 대표의 발언은 더욱 거침없었다. 한양대학교에서 학생들 앞에 선 김 대표는 "힘을 얻기 위해서라면 자유를 유보해서라도 경제를 빨리 발전시켜야 한다. 이게 박정희 대통령의 5·16 혁명이었다"라고 말했다.
이런 자리를 만든 것이 젊은 세대와의 '소통'을 위한 것이 아니라 '보수진영 찬양'이 의도였다면 나름 성공적이었다고 볼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 반대라면 매우 착잡할 따름이다. 그들만의 '권력'을 위해 시민의 '자유'를 유보시킨 쿠데타를 미화한 비유도 문제지만, 더욱 안타까운 부분은 문장을 끝맺은 논리에 있다.
군사반란이 경제발전을 위한 필수조건이라도 된다는 식의 이야기를 집권여당 대표의 입으로 들어야 한다는 것은, 그야말로 슬픈 일이지 않은가. 더군다나 오늘날의 한국은 21세기로 접어든 민주주의 사회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자랑스럽다는 것과, 그의 행적이 모두 정당하다는 것은 분명 별개의 주장이다. 전자의 감정이 후자의 사실관계를 뒷받침하는 근거가 될 수는 없다는 뜻이다.
"1948년 이후 민족 최고의 중흥기를 이룩하고 있다"면서도 "국민소득 2만8000달러 갔지만 다시 밑으로 떨어질 수 있다는 위기의식을 가져야 한다"고 공포심을 자극한 발언도 참담한 수준이다. "잘 살기 위해서 스스로의 자유를 제한하자"는 박정희 시대의 표어를 되풀이한 김 대표의 발언은, 한국이 "비약적인 경제의 발전, 한강의 기적"을 이루었다는 말과 어긋난다. 이제 "민족 최고의 중흥기를 이룩"했다고 말하고선, 오늘날에는 무엇을 위해 자유를 제한하자는 말인가? 이는 보수진영을 자랑할 때는 'G20 경제대국' 대열에 진입한 발전 규모를 언급하면서도, 비판에 대응할 때는 '언제 경제가 위기에 빠질지 모른다'고 말을 바꾸는 식이다.
5·16을 미화하며 '경제발전을 위한 혁명'으로 왜곡한 김 대표의 언변은 마치 상황에 따라 손가락을 접었다 펴는 묵찌빠놀이 같이 느껴지기도 한다. 가위가 날아들면 주먹을 불끈 쥐다가도, 상대방이 주먹으로 응수하면 빈 손을 열어보이는 것처럼 자유자재로 '유체이탈 화법'을 구사하니까 말이다. 비판에 대한 반박과 합리화를 위해 발언 속의 현실이 파도처럼 놀랍도록 출렁거릴 정도다.
활짝 편 손으로 사과를 요구한 피켓시위대에게 악수라도 청했다면 조금이라도 소통이 이루어졌을지도 모르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다만 한양대 특강에서 "한 국가의 경제는 대통령 임기 5년 동안 어떤 정책을 잘 써서 확 바뀌는 것이 아니다"라고 말하며 청년문제의 책임을 외면하는 손사래로 그쳤다.
기억한다, '도와주세요' 피켓 들었던 그를지난해 6·4 지방선거를 앞두고 '도와주십시오' 피켓을 들고 읍소작전을 폈던 김무성 새누리당 의원의 모습을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기억하고 있다. 세월호 참사가 벌어지고, 정부를 향한 비판의 목소리가 커지던 와중에 그는 피켓을 들고 섰다. 그리고 결과는 모두가 알고 있듯이, '도와주면 다 바꾸겠다'던 말은 승리 후에는 선거철 홍보문구로 머물고 말았다.
지난 23일 신림동에서 김 대표가 만난 피켓은, 작년을 기억하는 청년들의 절박한 물음은 아니었을까 싶다. '도와달라'던 정당이 선거가 끝나자 돌변한 태도에 "공약을 지키라"고 외치고, "고시촌에서 죽어간 청년을 아느냐"고 되물은 셈이다. '경제발전'과 '통일에 대한 인식'을 언급한 특강에 대해서는 또 이런 비판에 부딪힐지도 모른다. '발전된 경제의 혜택은 누구에게로 갔느냐'고, '비판에 대한 인식은 언제 바뀌느냐'고 말이다.
'로봇 영상' 등 다양한 콘텐츠 제작으로 홍보를 시도한 김무성 대표로서는 청년 문제에 대한 피상적인 접근법으로 인해 소통은 여전히 풀지 못한 과제로 남았다. 자신에게 가해진 비판에 모두 '불순세력'으로 몰아가는 '종북론'으로 일관한다면 반응은 더욱 싸늘해질 것이다. 유권자를 향한 태도변화가 깊게 각인된 현재로서는 더욱 그렇다.
임시방편적 대책이 아닌 확실한 현실개선을 위해서는 자세를 적극적으로 바꿀 필요가 있다. 오늘날 경제는 침체되고 청년실업률은 11.1%에 달해 IMF 이후 15년 만에 최대치에 달했다. 청년들조차 희망을 느끼지 못하는 사회는 이미 천천히 죽어가는 상태라는 자각이 절실히 요구되는 시점이다. 현실을 힘겨워하며 미래를 비관하는 청년들을 다시 일으켜 세우려면 무엇이 필요할까? 반값등록금일까, 아니면 최저임금 대폭 상승일까? 쉽고 빠르게 답을 찾으려는 시도에 앞서 명심해야 할 한 가지는, 적절한 선택사항 중 어디에도 진영논리를 위한 '색깔론'은 없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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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판은 피하고, 질타엔 공격... 김무성의 처세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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