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화·통일·노동·환경·농민 운동을 하며 자신만의 '자연건강법'을 설파한 민족생활의학자 해관(海觀) 장두석 선생이 25일 새벽 지병 악화로 별세했다. 향년 78세. 고인의 빈소는 조선대학교병원 장례식장 2층 1분향소에 마련됐다. 28일 발인해 국립5·18민주묘지에 안장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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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선생은 "우리가 발딛고 사는 '흙'을 살리기 위해 환경운동부터 시작했다"고 말했다.
"흙이 죽으면 우리도 죽어요. 그래서 (1970년대) 공해 추방운동을 한 거예요. 지금이야 환경운동이 익숙하지만 그때는 (환경운동 하면) 빨갱이었습니다. '아이고, 빨갱이 취급해도 좋고, 흰갱이 취급해도 좋다. 민족이 살아야 한다'며 추진한 거죠.""외부 세력에 의해 조국 강토가 분단된 현실에선 누구도 건강할 수 없다"고 한 선생은 통일운동에도 앞장 섰다. 2000년 6·15남북공동선언실천연대 상임대표, 민족문제연구소 이사, 겨레하나되기운동본부 공동대표를 맡았다. 배달문화선양회를 만들어 매해 개천절 행사를 진행한 선생은 지난해 10월 북한을 찾아 평양 단군릉에서 단군제 봉행 행사를 열기도 했다.
선생의 지인들은 "지난해 북한에 다녀온 뒤, 병세가 악화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15년 동안 고인을 모셨다"는 김재열(41)씨를 선생이 안치돼 있는 조선대병원 장례식장에서 만났다. 김씨는 "돌아가시기 전까지 자신이 1989년에 만든 민족생활학교 교육생들을 생각했다"고 말했다.
"북한에 다녀온 뒤로 약 5개월 동안 점점 몸이 안 좋아졌다. 스스로 '30년 동안 간암과 싸우고 있다'고 말했는데 선생을 찾는 사람들이 많아서 몸을 혹사하다보니 더는 이겨내지 못한 것 같다. 의식을 자주 잃어 광주 친척집에서 머물고 있었는데 돌아가시기 2주 전엔 갑자기 의식을 차리더니 '화순에 있는 (민족생활학교) 교육생들에게 가야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몸이 아프면 자기만 생각하게 되는데, 선생이 교육생들을 생각하는 것을 보고 눈물이 났다."김씨는 "돌아가시기 직전 선생의 특별한 유언은 없었지만 자신이 세운 '민족생활학교, 한민족생활문화연구회, 해관문화재단을 잘 이끌어 민족에게 도움이 됐으면 한다'는 말을 남겼다"고 전했다.
10여 년 동안 선생과 인연을 이어온 황풍년 <전라도닷컴> 편집장은 "보기 드문 귀한 어르신 한 분이 떠났다"며 안타까워했다. 황 편집장은 "(고인이) 두루마기 자락 입고, 전통과 민속을 자주 이야기 하니 고리타분한 옛날 어르신이라고 생각하기 쉬운데 항상 시대의 흐름에 깨어 있는 어른이었다"며 선생을 떠올렸다.
"지난해 선생이 내가 있는 사무실에 놀러와 막걸리를 나눠 먹은 게 마지막이다. 한 번 찾아간다는 걸…. (선생은) 자기 맘에 안 드는 행색을 보면 자주 불호령을 내렸다. 하지만 고통을 겪거나 안타까운 상황에 놓인 사람들에겐 정말 따뜻한 면모를 보였다."고인의 빈소는 조선대학교병원 장례식장 2층 1분향소에 마련됐다. 28일 발인해 국립5·18민주묘지에 안장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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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갱이 취급도 좋다"...'민족의학' 장두석 선생 별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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