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싱에서 백범과 부부로 살았던 주예보. 스무 살의 처녀뱃사공이었다.
저보성기념관 전시사진
그러나 그게 두 사람의 마지막이었다. 1933년 여름에 만나 다섯 해 가까이 사실상 부부로 살았지만 주애보는 끝내 백범을 광동인 장진구로 알았다. 고향인 자싱으로 가면서 그녀는 아마 멀지 않은 날에 백범과 재회할 수 있으리라고 믿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후 임정과 백범의 사정은 여의치 못했다. 8년 후, 해방이 되자 백범은 충칭에서 상하이를 거쳐 귀국했지만, 자싱에 들르지는 않았다. 그리고 1949년 6월에 백범은 다시 돌아오지 못하는 먼 길을 떠났다.
백범과 주애보의 이야기는 호사가들에겐 한 혁명가의 여담에 그칠지 모른다. 그러나 사랑으로 이루어진 정식 혼인이 아니고, 상식적인 부부로 보기 어려운 40년에 가까운 연령차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이 한 시절을 공유하고 정을 나눈 '남녀 관계'였다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다.
오직 광복의 일념으로 싸워 온 노 독립운동가로선 한때의 인연에 대한 감상이나 연민은 스스로 용납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건 난징에서 헤어진 뒤 수년 동안, 그리고 귀국에 앞서 백범이 자싱의 주애보를 찾지 않은 이유가 되고도 남는다.
백범과의 5년여의 세월을 함께하면서 그를 끝내 광동사람 장진구로 알았다고 했지만 어쩌면 주애보는 백범의 신분을 어렴풋하게나마 짐작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아니다, 설사 몰랐다 한들 서로 의지하며 살아온 두 사람에게 그게 무슨 상관이겠는가.
우리는 백범이 품고 온 한 장의 낡은 사진을 통해서 나라 잃은 독립운동가의 아낙이었던 스물 몇 살의 주애보를 기억한다. 반듯한 이마에 서글서글한 눈매를 가진, 후덕한 인상의 이 중국 여성은 경찰의 호구조사를 대신하면서 백범을 보호했고, 일제의 혹심한 공중폭격이 이루어지던 난징에서 백범과 생사를 같이했다.
백범이 담담하게 회고한 대로 자신에게 '공로가 없지 않은' 이 중국 여인에게 빚진 이는 백범뿐이 아니다. 오늘의 대한민국이 임정의 법통을 잇고 있다고 믿고, 백범을 민족의 큰 스승, 독립운동의 영수(領袖)로 기리는 모든 사람들에게도 주애보에 대한 부채의식은 아직도 살아 있는 것이다.
그 여자들의 삶, 혹은 '인간 해방'주애보가 백범을 만났던 때로부터 어느덧 82년이 지났다. 그때 스무 살이었던 처녀 뱃사공은 살아 있다 하여도 백 살이 넘었으리라. 그러나 나라는 말할 것도 없거니와 뒷사람들은 항일투쟁에 바쳐진 그이의 '이바지'를 다만 전설처럼 기억하고 있을 뿐이다. 도진순(창원대 교수)이 주애보에게 보내는 100년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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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나라의 독립운동은 그 나라 국민의 힘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이웃 나라와 세계의 따뜻한 애호와 지원이 있어야 하기에, 독립운동이 자기 민족 영웅호걸의 역사에 머물 순 없습니다. 당신 같이 비천한 여인과 인간 누구에게도 호소력이 있는 것이어야, 즉 새로운 인간 해방이 있어야 가능하고 의미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해방 이후 한국의 독립 운동사는 이제 자랑스러운 양지의 역사가 되었지만, 독립운동을 도운 많은 여인과 보통 사람들은 아직도 대개 어두운 곳에 남아 있습니다. 중국과 한국, 남성과 여성, 영웅과 보통 사람이라는 차이를 넘어서는 당신과 그이의 동거야말로 독립운동의 터전 이상의 의미가 있습니다.(……)1996년 대한민국 정부는 저봉장 선생에게 건국훈장 독립장을 수여하였고, 당신의 고향 가흥의 매만가 76호에는 그이와 당신의 '선상표박(船上飄泊) 생활'도 소개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이가 당신께 못 다한 정한이 가슴에 영영 남아 늦게라도 전해드리고자 이렇게 편지를 올립니다.- 도진순, 100년 편지 <주애보와 장진구의 못 다한 사연> 중에서자싱에서 이동녕, 엄항섭, 진동생과 같이 찍은 사진 속의 백범은 57세의 나이답지 않게 강건하고 안정되어 보인다. 주애보와 '선상표박'의 세월을 함께 하던 때일까. 도진순은 그녀에게 쓴 편지에서 '새로운 인간 해방'을 이야기했다. 독립투사 김구의 삶에서 주애보의 자리와 인간 해방은 얼마나 가깝고 얼마나 멀까.
주애보의 이바지를 인간 해방의 자리로 당당히 자리매김하기 위해서는 먼저 여전히 그늘에서 쓸쓸하게 기억되는 이들 여인들의 이야기를 양지로 끌어내야 할 일이다. 비록 조역(助役)에 그쳤지만 그들의 삶도 나라에 목숨을 건 남자들의 그것 못지않게 소중하고 치열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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쉰이 넘어 입문한 <오마이뉴스> 뉴스 게릴라로 16년, 그 자취로 이미 절판된 단행본 <부역자들, 친일문인의 민낯>(인문서원)이 남았다. 몸과 마음의 부조화로 이어지는 노화의 길목에서 젖어 오는 투명한 슬픔으로 자신의 남루한 생애, 그 심연을 물끄러미 들여다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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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살의 나이차... 백범과 중국여인의 '특별한 동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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