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일보> 여기자를 성추행한 혐의로 1심에서 징역 6월 집행유예 1년을 선고받은 최연희 의원이 지난 2006년 11월 10일 오전 서울중앙지법 재판정을 나오고 있다.
오마이뉴스 권우성
강제추행 혐의로 법정에 선 최 의원의 주장은 딱 네글자로 요약된다. 심신상실. 한 마디로 제정신이 아니었다는 말이다. '술에 취해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다'를 고상하게 포장한 주장이라고 할까. 술이 약한 그가 주량을 넘을 정도로 폭탄주를 마셔 기억도 나지 않고 추행할 의사도 없었다는 것이다.
그는 왜 심신상실을 주장했을까. 형법에 따르면 "심신장애로 인하여 사물을 변변할 능력이나 의사를 결정할 능력이 없는 자의 행위는 벌하지 아니한다"고 되어 있다. 추행이 인정된 이상 처벌을 피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이것밖에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 의원의 바람과는 달리, 법원은 심신상실을 인정하지 않았다. 최 의원이 '사고'를 친 직후 A기자를 쫓아가서 "내 말 들어봐 그게 아니고"라고 대화를 시도했던 점을 유력한 근거로 삼았다. 정상적인 판단이 아예 불가능한 상태가 아니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법원은 심신미약은 인정했다. 평소보다 술을 많이 마셨기 때문에 "사물을 변별할 능력이나 의사를 결정할 능력이 미약"했다는 판단이다. 심신미약은 형을 감경하도록 되어 있다.
1심은 "피고인이 심신미약 상태에서 우발적으로 범행에 이르게 되었다"면서도 "국회의원으로서 본분을 잃은 채 지나친 음주로 사리분별력을 떨어뜨려 강제추행까지 저질렀다는 점에서 오히려 비난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1심의 형량은 징역 6월에 집행유예 1년이었다. 실형은 피했지만 최 의원은 충격에 빠졌다. 국회의원에게 징역형은 곧 의원직 상실을 의미했다.
곧장 항소한 최의원의 운명은 항소심 재판부에 달려 있었다. 항소심도 '최의원이 심신상실 상태였고 추행의 고의가 없었다'는 주장을 받아주지 않았다. 거기에다 ▲ 피해자가 정신적 충격을 크게 받은 점 ▲ 국회의원에게는 고도의 준법의식과 품위유지가 요구되는 점까지 거론했다.
하지만 항소심은 형량을 확연하게 낮춘다. 벌금 500만 원 형을 선고유예한 것이다. 이쯤되면 처벌이라고 보기도 어렵다. 왜 그랬을까. 재판부가 선처한 이유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① 피고인이 당초부터 추행의사를 가졌다고 보기 어렵다.② 피해자의 가슴을 갑자기 움켜쥔 것으로서 폭행이나 협박의 정도가 고도에 이르지 않았다.③ 피해자가 용서하는 의사를 표시하였다.④ 피고인은 전과가 없고 반성하고 있다. 그야말로 기사회생이다. 최 의원은 법원의 선고유예형으로 의원직 상실의 위기를 넘어섰다. 최 의원은 2008년 무소속으로 18대 총선에 출마한다. 강원 동해·삼척 주민들은 그에게 다시 금배지를 선사했다. 성추행 전력도 그의 4선 가도를 막지는 못했다. 법원의 선처 덕분이었을까.
[판결 2] 박희태 전 국회의장의 캐디 성추행 사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