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시대 왕궁의 모습을 재현한 그림. 서울 용산구 용산동의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찍은 사진.
김종성
고려가 세워진 서기 10세기 동아시아에서는, 거란족 요나라의 상대적 우위 속에 요나라와 송나라(북송)가 대결하고 고려가 중간에 놓이는 구도가 등장했다. 고려는 처음에는 송나라와 동맹을 체결했다. 송나라를 상국(上國)으로 받드는 동맹관계를 맺은 것이다.
송나라는 고려를 진정한 동맹국으로 믿었을지 모르지만, 고려는 송나라에 마음까지 주지는 않았다. 송나라의 손을 잡고 있으면서도 마음속으론 고려 자신만 생각했던 것이다. 이 점은 송나라의 절박한 요청을 뿌리친 데서 잘 드러난다.
986년, 송나라는 '요나라에게 빼앗긴 중국 땅을 찾아야 한다'면서 고려에 파병을 요청했다. 고려시대 역사를 축약한 <고려사절요>에 따르면, 고려 임금인 성종은 일부러 시간을 끌면서 대답을 회피했다. 송나라가 겁을 주기도 하고 달래기도 하면서 계속 파병을 요청하자, 성종은 파병할 듯한 자세를 취해 송나라를 기쁘게 했다.
하지만 결국에는 파병을 하지 않았다. 중국 땅을 늘리기 위한 전쟁에 고려가 나설 필요가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어떻게 하면 송나라와의 동맹을 유지할까를 걱정한 게 아니라, 어떻게 하면 고려의 이익을 극대화시킬까를 고민한 것이다.
요나라는 '고려와 송나라의 동맹이 굳건하지 않더라도 이 동맹이 유지되는 한 자국의 중국 정복이 성사될 수 없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요나라는 두 나라의 동맹관계를 깨기로 결심했다. 이에 따라 감행한 일이 993년의 고려 침공이다.
이때 구원투수로 등장한 인물이 유명한 서희다. 서희의 외교술에 힘입어, 고려는 고려의 실익을 챙기는 선에서 요나라와의 전쟁을 막았다. 고려는 지금의 평안북도 땅이자 여진족 구역인 강동 6주를 고려가 점령하는 것을 요나라가 양해하는 조건으로 요나라를 상국으로 받들기로 했다.
이로써 고려와 송나라의 동맹은 깨지고 고려와 요나라의 동맹이 성립했다. 고려는 송나라에 대한 의리를 지키기 위해 요나라와 싸운 게 아니라, 강동 6주라는 실익을 챙기는 조건으로 요나라와의 동맹을 성사시켰다. 고려의 동맹외교에서 제1원칙은 고려의 이익이었던 것이다.
자국의 이익을 철저하게 고려한 '고려의 외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