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전기 학위수여식한국외대 전기학위수여식이 진행되고 있다
한국외대
졸업식의 즐겁지만 슬픈 모습들대학의 의미는 시간이 흐르며 많이 변했지만 대학 졸업식 풍경은 여전하다. 문 앞에는 꽃 파는 분들이 저마다 만원, 2만원에 꽃을 팔고 계시고 사진 기사분들과 함께 사진 찍는 가족의 모습들도 눈에 자주 띈다. 잔디밭에서 졸업하는 친구들과 함께 학사모를 던지는 모습을 보면 졸업하는 분들의 즐거운 모습이 느껴져 나 또한 흐뭇해지는 모습들이다.
변하지 않는 모습만큼이나 다양한 플랜카드도 졸업 캠퍼스를 장식했다. 하지만 동아리, 학회 후배들이 걸어주는 투박하지만 손으로 열심히 쓴 대자보는 많이 사라지고 취업한 회사에서 직접 걸어주는 플랜카드가 굉장히 많이 걸려 있었다.
저마다의 회사에 취업과 졸업을 축하한다며 걸린 플랜카드를 보며 남몰래 씁쓸한 마음을 감출 수가 없었다. 이전의 졸업식에는 어떠한 대자보와 플랜카드가 걸렸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학교활동을 열심히 하고 선, 후배간의 돈독한 정이 그대로 드러나는 투박하면서도 예쁜 대자보를 보는 것도 하나의 재미였는데 취업하지 못한 사람들은 플랜카드에도 걸리지 못하는 괜한 소외감이 들 정도로 캠퍼스는 회사의 플랜카드가 가득했다.
또한 취업하지 못하거나 시험 준비로 졸업을 미루다 결국 졸업을 해야하는 사람들은 졸업식에도 많이 참석하지 않기도 했다. 초, 중, 고등학교 졸업식은 친구들과 '졸업' 자체만으로도 기뻐하고 행복할 수 있었는데 대학교 졸업은 '졸업'만으로는 축하할 수 없는 즐겁지만 슬픈 자리가 되어버린 것이다. 지난 12년간의 학교생활보다 어느 때보다 치열했던 대학 생활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학생에서 벗어나 무섭지만 그래도 난 할 수 있다.
안정적이진 않지만 난 무튼 일을 하고 있는 상황이었고 졸업 유예 4학기를 꽉 채우고 졸업을 했다. 학교에 너무 많은 정을 남겨둔 탓인지, 내 젊음이 그대로 남겨져 있는 곳이어서 그런지, 첫 서울생활을 시작하고 7년동안 속속들이 다 알고 있는 고향같은 곳이어서 그런지 졸업은 너무나 아쉽기만 했다. 가족과 사진도 찍고 부모님 학사모도 씌워드리니 참, 어렵게도 왔지만 이제 대학 졸업한만큼 내 몫을 하고 살아야겠다는 또 다른 무거운 책임감이 한 쪽 마음을 덮었다.
2015년 2월, 졸업을 하고 나니 정말 이제 어떠한 신분도 없는 일반인이 되었다. 초등학교 1학년때부터 대학교 4학년까지. 졸업 유예까지 합하면 총 18년을 학생으로 살았는데 이제는 일반인, 직장인, 사회인으로 분류된다는 것이 조금은 두렵다. 학생이라는 이름 아래서 부모님, 교수님, 선배님들의 지지와 응원을 받고 발자취를 따라갔는데 이제 오롯이 내 이름 아래서 내 삶을 온전히 책임져야 한다는 것이 몸소 느껴진다.
졸업 전부터 시작해서 지금까지 난 사회적경제와 관련된 중간지원조직에서 일을 하고 있다. 대학을 다니면서 '돈'이 있는 사람만 잘 사는 사회가 아닌 우리 모두가, 자신에 능력에 맞추어 일을 하고 일을 할 수 있는 기회를 공평히 가질 수 있는 사회를 바랐다. 그 하나의 대안이 사회적경제이지 않을까, 해서 시작한 일이 어느 덧 1년. 하지만 지금 사업단도 2016년 5월이면 끝나는 사업이다.
일을 하면서 졸업을 준비했기에 다른 사람들보다는 나은 상황이었지만 이후 지금의 일이 끝나면 난 무엇을 어떻게 일을 하며 살아야 할지 아직 막막하다. 하지만 젊디 젊은 20대이니까, 무엇이든 도전해도 잃을 건 없으니까, 시간은 금이라지만 이 젊은 시기에 실패를 두려워해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면 그것만큼 바보 같은 일은 없다고 생각하며 현재도, 미래도 충실히 고민하고 있는 중이다.
이렇게 뭐 하나 안정적이지 않고 불안한 하루를 견디고 버티며 내일을 꿈꾸고 기다리는 나를 비롯한 젊디젊은 청춘, 졸업생들에게 모두 전하고 싶다.
졸업하느라 정말 수고했습니다! 모두들 졸업 축하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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