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업하느라 정말 수고했습니다!"

3000만원짜리 학위증, 그러나 마냥 기쁘지만은 않았던 졸업식

등록 2015.03.16 10:40수정 2015.03.16 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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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2월, 많은 학교들이 졸업하는 달이다. 올해는 윤달이 껴서 설날이 늦어지는 바람에 많은 대학교은 설을 전후로 학위수여식을 진행하였고 많은 졸업생들과 그의 지인, 가족들이 그들의 졸업과 새로운 출발을 축하했다.


수많은 꽃다발들이 오갔고 친구들과 혹은 부모님, 교수님과 다정하게 학교 안에서 사진을 찍는다. 지겹게도 다닌 도서관, 강의실을 보며 졸업을 위해 노력했던 자신의 모습을 기억한다. 나 또한 2009년 입학 이후 6년 만에 드디어 졸업을 하였다. 학생회 활동을 하며 알게 됐던 많은 친구들과 인사를 하고 사진을 찍었고 함께 졸업을 하는 친구, 선배, 후배들과도 진심으로 서로의 졸업을 축하했다.

물론 졸업식 자체를 오지 않은 친구들, 선배들도 많았다. 시험 준비, 취업 스펙 준비, 면접 준비 등 졸업식 자체를 즐기는 것조차 사치인 우리 세대. 졸업식이 모두에게 축복이고 기쁨일 수 없다는 것이 스스로 졸업식을 즐기면서도 괜시리 안타까웠다. 기다리고 기다리던 대학 졸업인데 말이다.

졸업식 사진 답답한 현실이지만 졸업은 즐겁다
졸업식 사진답답한 현실이지만 졸업은 즐겁다이수지

6년 만에 졸업장 수여 그리고 3000만원짜리 학위증

재수해서 들어간 대학교. 그래서 부모님은 빠른 졸업을 원하셨다. 남들보다 늦게 시작했으니 휴학하지 말고 바로 졸업하라는 말씀. 자의든 타의든 나는 휴학 한 번 없이 학교를 마쳤고 2012년 2학기를 마지막으로 학교 이수 학점은 다 채울 수 있었다.

사실 학교 이수 학점을 다 마치고 졸업 논문 등 요건만 채우면 바로 졸업이 가능했으나 당시 나는 바로 졸업을 할 수가 없었다. 2012년. 23살이었던 무엇을 하면서 돈을 벌고 일을 하고 싶은지 확신도 없었고 토익 등 모두가 요구하는 스펙 또한 충분치 않았다. 하지만 당장 졸업을 하고서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무엇을 하고 싶은지에 대한 충분한 고민도 없이 닥치는 대로 이력서를 내는 '묻지마 취업'은 정말 하고 싶지 않았다. 4년동안 학교를 다녔고 '사회과학'을 배웠고 '행정'을 배우며 내가배워온 이 학문과 배움을 발현할 수 있는 그런 일을 찾고 싶었다.


물론 이러한 개인적인 고민 이외에도 토익도 변변치 않았고 알바로 생활비 충당하기도 바쁜데 해외연수같은 대외활동은 꿈만 같은 일이었다. 남들보다 더, 아니 남들만큼의 스펙도 없던 나에게 아직 졸업은 무리였고 남은 건 '졸업 유예' 뿐이었다.

졸업 유예 제도는 졸업 논문, 영어 성적 등 졸업에 필요한 요건을 충족시키지 않고 학교마다 상이하지만 최대 4학기까지 졸업을 미룰 수 있는 제도이다. 실제로 졸업 유예생이 되면 학교는 다니지 않지만 재학생으로 분류되어 졸업 유예 기간내에 취업이 될 때까지 최대한 미룰 수도 있다.


많은 학생들이 취업이 되지 않은 채로 졸업을 하는 것을 굉장히 불안해하고 면접 등을 보러가도 졸업 시기와 취업 기간이 길수록 개인에게 불리하다는 이야기가 있어 졸업 유예 제도는 많은 4학년 대학생들이 이용하는 학사제도이다. 언제부턴가 '졸업=취업'과 같은 의미가 되어 대학교 4학년들을 옥죄어오기 시작했던 것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6년만의 졸업을 하기위해 졸업식을 가면서 만난 많은 사람들이 '졸업해서 다행이다'라는 말을 많이 해주었다. 일을 시작하고 졸업해서 다행이라는 것이다. 웃으며 감사하다고 인사는 했지만 후련하지만은 않았다. 진리의 상아탑이라고 불리는 대학의 학위증을 따고 졸업을 했는데 그간의 공부와 학업보단 '취업'이 졸업의 요건이 된 것 같아 마음 한 켠으로는 답답했다.

학위증을 받았지만 종이 한 장으로 표현된 그간의 시간들을 어떻게 잊을 수 있을까. '졸업'만으로는 축하받기 힘든 어려운 취업 시장과 고단한 우리 세대의 삶이 느껴지는 말들이라 들으면서도 씁쓸함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학위증 8학기의 등록금이 고스란히 담겨있는 학위증
학위증8학기의 등록금이 고스란히 담겨있는 학위증이수지

대학? 취업을 위한 하나의 문턱 그리고 이력서의 한 줄

내가 고등학생 때 대학교를 가기 위한 이유는 단 하나. 고등학교만 졸업하는 것보단 대학교에 가서 더 많이 배우고 더 깊이 연구해서 사회에 나갔을 때 모두가 탐낼만한 인재가 되고 싶어서였다. 부모님께 많이 의지한 만큼 좋은 인재, 좋은 사람이 되어 보답 드리고 싶었고 이 사회에서도 대학생이 된 만큼 졸업하고 나서 사회에 필요한 일꾼이 되고 싶었다.

아무리 청년 취업이 어렵다고는 하지만 '돈'만 벌기 위해 대학을 졸업한 사회인이 되고 싶지 않았다는 게 더 정확할 것이다. 대학을 졸업하고 더 나은 사회인이 되고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단 욕심이 있었다.

하지만 이제 대학생이라는 위치가 단순히 사회에 기여하고 많이 배운만큼 사회에 환원한다는 생각은 그리 크지 않은 것 같다. 남들 가니까 다 가는, 대학교라는 곳은 어느 새 고등학생이라면 안 가면 안 되는 곳이 되어버린 것이다. 누구나 다 가야만 하는 곳. 취업을 하려면 아무리 안 좋은 대학이라도 고등학교 졸업생으로만 남으면 안 된다는 사회가 정한 기준들.

어느새 우리나라 고등학생 10명 중 8명이 대학을 가는 이 세상에서 대학생이 되었다고 해서 무엇이 특별하고 다를 건 없다. 그저 대학교는 진리의 상아탑이라기보단 나의 '취업'을 위한 이력서의 한 줄이 될 뿐이었다. 대학생들이 사회에 도움이 되고 싶다고 말하면 선배들과 직장인들은 '네 밥줄이나 걱정하라'고 하고 인간을 탐구하고 철학을 고민하는 인문학과들은 취업이 잘 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줄줄이 폐과 위기에 처해있다.

1학년 필수전공으로 경영학 개론을 듣게하는 학교도 있고 대학교 자체도 '취업률'로 서로를 평가할만큼 몇 십년만에 이전 대학의 모습과는 아주 다른 대학교와 대학생들이 되었다.

2014년 전기 학위수여식 한국외대 전기학위수여식이 진행되고 있다
2014년 전기 학위수여식한국외대 전기학위수여식이 진행되고 있다한국외대

졸업식의 즐겁지만 슬픈 모습들

대학의 의미는 시간이 흐르며 많이 변했지만 대학 졸업식 풍경은 여전하다. 문 앞에는 꽃 파는 분들이 저마다 만원, 2만원에 꽃을 팔고 계시고 사진 기사분들과 함께 사진 찍는 가족의 모습들도 눈에 자주 띈다. 잔디밭에서 졸업하는 친구들과 함께 학사모를 던지는 모습을 보면 졸업하는 분들의 즐거운 모습이 느껴져 나 또한 흐뭇해지는 모습들이다.

변하지 않는 모습만큼이나 다양한 플랜카드도 졸업 캠퍼스를 장식했다. 하지만 동아리, 학회 후배들이 걸어주는 투박하지만 손으로 열심히 쓴 대자보는 많이 사라지고 취업한 회사에서 직접 걸어주는 플랜카드가 굉장히 많이 걸려 있었다.

저마다의 회사에 취업과 졸업을 축하한다며 걸린 플랜카드를 보며 남몰래 씁쓸한 마음을 감출 수가 없었다. 이전의 졸업식에는 어떠한 대자보와 플랜카드가 걸렸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학교활동을 열심히 하고 선, 후배간의 돈독한 정이 그대로 드러나는 투박하면서도 예쁜 대자보를 보는 것도 하나의 재미였는데 취업하지 못한 사람들은 플랜카드에도 걸리지 못하는 괜한 소외감이 들 정도로 캠퍼스는 회사의 플랜카드가 가득했다.

또한 취업하지 못하거나 시험 준비로 졸업을 미루다 결국 졸업을 해야하는 사람들은 졸업식에도 많이 참석하지 않기도 했다. 초, 중, 고등학교 졸업식은 친구들과 '졸업' 자체만으로도 기뻐하고 행복할 수 있었는데 대학교 졸업은 '졸업'만으로는 축하할 수 없는 즐겁지만 슬픈 자리가 되어버린 것이다. 지난 12년간의 학교생활보다 어느 때보다 치열했던 대학 생활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학생에서 벗어나 무섭지만 그래도 난 할 수 있다.

안정적이진 않지만 난 무튼 일을 하고 있는 상황이었고 졸업 유예 4학기를 꽉 채우고 졸업을 했다. 학교에 너무 많은 정을 남겨둔 탓인지, 내 젊음이 그대로 남겨져 있는 곳이어서 그런지, 첫 서울생활을 시작하고 7년동안 속속들이 다 알고 있는 고향같은 곳이어서 그런지 졸업은 너무나 아쉽기만 했다. 가족과 사진도 찍고 부모님 학사모도 씌워드리니 참, 어렵게도 왔지만 이제 대학 졸업한만큼 내 몫을 하고 살아야겠다는 또 다른 무거운 책임감이 한 쪽 마음을 덮었다.

2015년 2월, 졸업을 하고 나니 정말 이제 어떠한 신분도 없는 일반인이 되었다. 초등학교 1학년때부터 대학교 4학년까지. 졸업 유예까지 합하면 총 18년을 학생으로 살았는데 이제는 일반인, 직장인, 사회인으로 분류된다는 것이 조금은 두렵다. 학생이라는 이름 아래서 부모님, 교수님, 선배님들의 지지와 응원을 받고 발자취를 따라갔는데 이제 오롯이 내 이름 아래서 내 삶을 온전히 책임져야 한다는 것이 몸소 느껴진다.

졸업 전부터 시작해서 지금까지 난 사회적경제와 관련된 중간지원조직에서 일을 하고 있다. 대학을 다니면서 '돈'이 있는 사람만 잘 사는 사회가 아닌 우리 모두가, 자신에 능력에 맞추어 일을 하고 일을 할 수 있는 기회를 공평히 가질 수 있는 사회를 바랐다. 그 하나의 대안이 사회적경제이지 않을까, 해서 시작한 일이 어느 덧 1년. 하지만 지금 사업단도 2016년 5월이면 끝나는 사업이다.

일을 하면서 졸업을 준비했기에 다른 사람들보다는 나은 상황이었지만 이후 지금의 일이 끝나면 난 무엇을 어떻게 일을 하며 살아야 할지 아직 막막하다. 하지만 젊디 젊은 20대이니까, 무엇이든 도전해도 잃을 건 없으니까, 시간은 금이라지만 이 젊은 시기에 실패를 두려워해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면 그것만큼 바보 같은 일은 없다고 생각하며 현재도, 미래도 충실히 고민하고 있는 중이다.

이렇게 뭐 하나 안정적이지 않고 불안한 하루를 견디고 버티며 내일을 꿈꾸고 기다리는 나를 비롯한 젊디젊은 청춘, 졸업생들에게 모두 전하고 싶다.

졸업하느라 정말 수고했습니다! 모두들 졸업 축하해요.
#대학 졸업식 #취업과 졸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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