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이미테이션 게임>은 천재 수학자이자, 동성애자였던 앨런 튜링(베네딕트 컴버배치)의 일대기를 다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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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이미테이션 게임>은 천재 수학자이자, 동성애자였던 앨런 튜링(베네딕트 컴버배치)의 일대기를 다룬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군의 암호체계인 '에니그마'를 해독하며 연합군의 승리를 이끌었던 앨런 튜링. 하지만 그는 동성애자라는 이유로 '성문란 혐의'로 기소돼 '화학적 거세'를 당해야 했다.
1954년, 튜링은 청산가리를 주입한 사과를 먹고 41세의 나이에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애플'의 로고인 한 입 베어 문 사과는 '컴퓨터의 아버지'인 튜링의 사과를 뜻한다는 설도 있다. 전쟁 비밀요원이자, 동성애자였던 앨런 튜링의 존재를 숨겨왔던 영국 정부는 2013년,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특별사면권에 따라 튜링을 공식 사면했다. 튜링이 세상을 떠난 지 59년 만이었다.
2월의 마지막 날, 합정의 한 영화관에 5명의 여성이 모였다. 이들은 모두 튜링과 마찬가지로 같은 성을 좋아하는 동성애자들. 토요일 저녁, 이성애자들로 가득한 스크린 앞에 이들은 나란히 자리를 잡고 앉았다. 나도 그들 옆자리에 앉았다.
'1인가구, 마을과 만나다' 기획을 구상하면서 꼭 만나고 싶은 이들이 있었다. 바로 성소수자들. 공개적으로 결혼식까지 치렀지만 구청에서 혼인신고를 거부당한 김조광수·김승환 커플의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이성애 중심의 현 사회 속에서 성소수자들이 '합법적인' 범위 안에서 결혼을 하고, '정상가족'을 이루는 것은 불가능하다. 아이도 입양할 수 없다. 이들은 어떻게 공동체를 이루며 살아갈까.
오랜 기다림 끝에 마포레인보우주민연대(아래 마레연) 영화 '벙개'에 참석할 수 있었다. 튜링이 동성애자라는 이유로 부당하게 겪는 고난들을 볼 때마다, 마음속으로 궁금했다. 옆에 앉은 이들은 지금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성소수자들이 함께 본 <이미테이션 게임>영화가 끝나고, 근처 호프집으로 이동했다. 이날 '벙개'에는 현재 마레연에서 활동하고 있는 이들뿐만 아니라, 퀴어문화축제 기획단에서 활동하면서 "영화도 보고, 사람도 만나러" 참석했다는 이, 2년 만에 마레연 모임에 다시 나왔다는 이도 있었다. 몇몇은 이미 다른 퀴어 관련 모임에서 안면이 있었다.
'우야'(30)가 얼마 전 유기견 보호소에서 입양한 강아지를 데리고 합류했다. 과거의 상처로 분리불안이 심한 강아지 때문에 이날 우야는 티켓까지 다 끊어놓고도 영화를 보지 못했다. 마포에서 혼자 살고 있는 우야는 올해부터 마레연 '당번'을 맡아서 활동하고 있다. 일종의 운영진이다. 현재 4명의 당번이 있다. 따로 '대표'는 없다.
"육아 때문에 힘드시겠어요. 말할 수도 없는 아이 때문에(웃음)."
또 다른 당번인 '달꿈'(29)이 맞은편 우야의 강아지를 바라보며 말했다. 달꿈은 2년 전 부모님에게 커밍아웃한 이후 은평구에서 독립해 살고 있다. '달꿈'은 "퀴어적인 요소가 있어서 일부러 이 영화를 골랐다"면서 "너무 재밌었다"고 말했다.
"앨런 튜링이 약혼자인 조안 클라크에게 커밍아웃을 했을 때, (조안 클라크가) '그게 뭐 어때서'라고 반응하는데, 멋있었어요. '우리는 우리만의 방식으로 사랑하고 있는 것 아니냐'고. 어떻게 반응할지 궁금했거든요."달꿈은 "저는 그 이야기(커밍아웃)를 할 때 뭔가 이상하다"면서 "아무렇지 않게 이야기를 하자니 상대방을 살피게 되고, 그렇다고 머뭇거리자니, 나한테는 나의 일부분을 이야기하는 건데... 이야기할 때마다 기분이 이상하다"고 말했다. 대학생이라는 '어니언'은 <이미테이션 게임>이 얼마 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각색상을 받았을 때, 수상자인 그레이엄 무엄이 했던 이야기가 가슴에 와닿았다고 말했다.
"이상해도 괜찮다고 했잖아요. 남들과 달라도 괜찮다고. TV에서 그거 보면서 엄마한테 막, '엄마, 이상해도 괜찮대'(stay weird)"마레연은 마포구에 머물고 있는 LGBT(레즈비언, 게이, 바이섹슈얼, 트랜스젠더)들의 커뮤니티다. 2010년 6·2 지방선거 당시 '지역 정치에 퀴어의 목소리를 담자'는 취지로 '마포 레인보우 유권자 연대'를 결성한 것에서 시작해, 선거 후 성소수자 커뮤니티 모임으로 발전했다. 회원들 가운데는 레즈비언이 가장 많다. 인터넷 커뮤니티를 통해 활동하면서 정기적으로 오프라인 모임을 하고 있다. 매달 열리는 밥상 모임은 많을 때는 30명 가까이 참석할 정도로 활성화 돼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