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1시. 버스가 멈춘 지 스물한 시간이 지난 시각. 버스가 출발했다. 앞서 나간 두 대의 버스를 바짝 쫓아, 우리가 탄 버스가 조용하게 굴렀다.
Dustin Burnett
바야흐로 오후 3시가 되었다. 아저씨가 우리를 불렀다.
"We go Nepalgunj. In Nepalgunji, bus to another border." (우리는 네팔간지로 간다. 네팔간지에, 다른 국경으로 가는 버스가 있다.)"우리는 못 가요. 외국인이라서 다른 국경으로는 못 넘어가요."네팔과 인도를 연결하는 국경은 여러 곳이 있지만, 외국인이 넘을 수 있는 국경은 세 군데다. 인도 시킴에서 네팔로 갈 때 우리가 이용한 카카르비타와 대부분의 여행자가 이용하는 소나울리, 그리고 마헨드라나가르. 네팔간지로 가는 건 뻔한 헛걸음이다. 아저씨가 다른 승객들에게 우리의 말을 전했다. 버스에 탄 사람들이 일제히 외쳤다.
"Oh. No Problem!"(오, 문제 없어요!)"Yes! Yes, Problem!(아니요, 문제 있어요!)" 더스틴과 내가 한목소리로 외쳤다. 네팔간지까지 갔는데 국경을 넘지 못하면, 다시 15시간의 끔찍한 버스를 타고 소나울리로 가야 할 것이다. 못 간다. 네팔간지로 간다던 사람들도 어찌된 일인지 움직이지 않았다. 그 방향으로도 문제가 생긴 모양이었다. 우리는 다시 곰처럼 미련하게 기다렸다.
지루했다. 끔찍하게 더웠다. 몇 분 정도는 훌쩍 뛰어넘어가도 좋으련만. 시간은 믿음직스럽고 고지식한 친구처럼, 1분 1초를 단 한 번 건너뛰지 않고 곧이곧대로 흘렀다. 저녁 6시가 되었다. 아저씨가 다시 소식을 들고 찾아왔다.
"Problem, no fixed."(문제. 해결 안 돼.)"그럼 어떻게 해요?""8 o'clock. Dark and safe. Then all the buses here. Go together."(8시. 어둡고 안전하다. 그때 여기 버스들 함께 간다.)"위험하지 않겠어요?""We go together at night. OK."(밤에 함께 가면 괜찮다.)괜찮다고 말하는 아저씨의 얼굴은 근심으로 가득했다. 일어날 수 있는 모든 재수 없는 일들이 머릿속에 펼쳐졌다. 사람들이 돌을 던진다. 날아온 돌에 창문이 깨져서 창가에 앉은 더스틴이 다친다. 돌 때문에 타이어가 빠져서 버스가 멈춘다. 사람들이 버스 안으로 들어와 외국인인 우리를 납치한다. 누군가 위험한 무기를 들고 나타난다.
괜한 걱정이었다. 저녁 8시가 되도 버스는 출발하지 않았으니. 새벽 4시에 멈춘 버스는 그 자리에서 꿈쩍도 하지 않고 밤 10시를 넘겼다. 자정이 넘었다. 그리고 새벽 1시. 버스가 멈춘 지 21시간이 지난 시각. 버스가 출발했다. 앞서 나간 두 대의 버스를 바짝 쫓아, 우리가 탄 버스가 조용하게 굴렀다. 무서웠다.
온종일 버스가 다시 출발하기만을 기다렸지만, 이런 식은 아니었다. 버스에 탄 네팔 사람들도 긴장한 눈초리였다. 불을 켜지 않은 어두운 버스 안은 쥐죽은 듯 조용했다. 작게 빛나는 서른 쌍의 눈빛들이, 창밖을 보며 초조히 상황을 살폈다.
30분쯤 달리던 버스가 멈췄다. 버스 차장이 승객들에게 무언가 외쳤다. 사람들이 일제히 버스에서 내렸다. 폭동에 나선 사람들의 공격이 시작된 건가? 당장 버스에서 내려 피신하라는 명령인가? 의지할 데 없는 우리는 아저씨를 찾았다. 이미 밖으로 나가 있던 아저씨가 창문 밖에서 가엾은 우리를 발견했다.
"국경까지 안 쉬니까, 미리 볼일을 보래요."버스가 지나는 어두운 마을의 풍경은 스산했다. 타이어 빠진 버스 한 대가 마을 한쪽에 주저앉아 있었다. 네팔 경찰들이 마을을 삼엄히 지키고 서 있었다. 버스는 굼뜨게 가다 서기를 반복했다. 그렇게 다시 30분. 원형 교차로에 닿은 버스는 둥근 길을 따라 5바퀴를 돌았다.
사람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원형 교차로에서 다음 길로 빠지는 길이 나올 때마다, 젊은 버스 기사는 운전대를 잡은 두 팔에 잔뜩 힘을 주고 망설였다. 사람들이 반쯤 일어나 논쟁을 벌였다. 그렇게 2바퀴를 더 돌던 버스가 다시 주저앉았다.
사람들이 버스 중앙으로 모여 조용히 토의를 시작했다. 표정들이 진지했다. 새벽 2시. 어딘지 모르는 네팔의 서쪽 끝. 폭동으로 인해 가지 못하는 버스. 심각한 네팔 사람들의 표정. 겁이 났다. 화이트 아웃 속에서 해발 5500m 쏘롱 라를 넘을 때보다 더. 브레이크가 고장 난 버스를 타고 히말라야 산자락을 급히 내렸던 때보다 더.
자연재해나 사고가 아닌, 사람이 우리를 해칠 수 있다는 생각에 더 두렵고 무서웠다. 5분 정도의 웅성거림 끝에 결론이 난 듯했다. 승객 일부가 짐을 들고 밖으로 나갔다. 짐을 들고 용변을 보러 가는 건 아닐 텐데?
"Mahendranagar. Strike. People fight now. If bus go, people attack. Very dangerous. What do you do now?(마헨드라나가르 폭동. 지금 사람들이 싸우고 있다. 버스가 가면, 공격한다. 매우 위험하다. 어떻게 할 거냐?)"어떻게 할 거냐고? 새벽 2시에, 어딘지 알 수 없는 마을 한가운데서, 폭동 때문에 갈 수 없는 버스에 앉아 있는 이 상황에, 어떻게 할 거냐고? 태어나서 받은 가장 어려운 질문이다. 게다가 주관식이다. 답이 없다. 답이 없지만 답을 내야 했다. 아저씨의 표정은 초조했다. 상황이 급하니 당장 결정하라고 다그치는 듯했다.
"그럼 지금 이 버스는 어디로 가요?"내가 울상을 지으며 물었다.
"Dhangadhi. 20 min from here. There is another border. We go there."(20분 거리에 당가디 마을. 거기에 국경이 있다. 거기로 간다.)"그럼 지금 내리는 사람들은 어디로 가요?""I don't know. Maybe, they must go Mahendranagar."(잘 모른다. 아마 마헨드라나가르로 가야만 하는 사람들이다.)빨리 판단하자. 외국인인 우리가 국경을 넘으려면 마헨드라나가르로 가야 하지만, 버스에서 내린 사람들을 쫓아 새벽 2시에 어딘지도 모르는 이곳을 정처 없이 걸을 순 없다. 무엇보다 이 아저씨 옆에 붙어 있어야 한다. 국경을 넘지 못하고 소나울리로 돌아가야 한다고 해도 어쩔 수 없다. 지금에 와서 문제는 국경을 넘느냐 마느냐가 아니다. 이 위험에서 벗어나는 것이 최우선이다. 당가디로 가자.
버스가 다시 천천히 굴렀다. 아무리 기다리고 염원해도 갈 수 없는 마헨드라나가르와 달리, 당가디는 정말 도착할 수 있는 곳이었다.
더스틴과 나는 버스에서 내린 20여 명의 사람과 한 팀이 되어 벤치에 앉았다. 보따리를 든 젊은 부부와 일자리를 구하러 가는 청년. 그리고 우리의 아저씨. 사람들은 작은 소리로 속삭이며 네팔어로 대화를 이어나갔다. 아이가 된 기분이었다. 어른들의 말을 알아듣지는 못하는 아이. 하지만 이들이 나를 지켜줄 것이라는 강한 믿음을 가진 아이. 우리는 신이 난 모기떼의 먹이가 되어, 쏟아져 내려오는 잠을 쫓으며, 날이 밝기를 기다렸다.
새벽 4시. 작은 소리로 대화하던 사람들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국경으로 간다. 거리는 아직 어두웠다. 국경까지는 걸어서 30분. 20여 명의 사람들이 우리를 감싸고 걸었다. 배낭 무게에 걸음이 늦춰졌다. 사람들과 함께 걸어야 안전하다며, 아저씨가 배낭을 들어주겠다고 했다. 나는 괜찮다고 하고 걸음을 재촉했다. 버스 안을 가득 채웠던 두려움은 어느 순간 사라졌다. 무섭지 않았다.
새벽 4시, 네팔의 서쪽 끝, 이름도 알 수 없는 마을에서, 건널 수 없는 국경을 향해 걷고 있지만, 무섭지 않다. 우리는 길을 잃었다. 혼자였다. 길은 아직 뚜렷하지 않지만, 우리는 더 이상 혼자가 아니다. 우리 곁에는 어제를, 그제를 함께한 네팔 사람들이 있다. 아저씨가 있다.
국경에 닿았다. 더스틴과 나는 출입국관리사무소로 보이는 작은 건물로 들어갔다. 직원은 시간이 일러 오전 7시까지 기다려야 한다고 했다. 우리가 금세 따라오리라 짐작한 네팔 사람들이 저 멀리 걸어가고 있었다. 이렇게 작별이다. 우리의 아저씨. 청년들. 젊은 부부. 말없이 웃어주던 아주머니. 고맙다고 말하고 싶었는데. 걱정해주고 지켜줘서 고맙다고. 아쉬운 마음에 그들의 등을 향해 외쳤다.
"7시까지 기다려야 해요! 잘 가요! 고마워요! 안녕!" 사람들이 돌아봤다. 일자리를 구하러 인도로 간다던 청년이 우리 쪽으로 달려왔다. 청년은 국경을 지키는 군인에게 상황을 물었다. 군인의 대답을 들은 청년은 안심했다는 듯, 우리를 보며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다시 사람들 무리로 달려갔다. 희미한 여명 아래서 그들이 걸었다. 인도를 향해. 여명 때문인지, 그들의 뒷모습이 희미하게 빛났다. 수호천사의 뒷모습처럼.
그리고 우리는 다시, 혼자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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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량한 부부의 히말라야 여행,' '불량한 부부의 불량한 여행 - 인도편'을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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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닭장 버스'에서 보낸 21시간... 악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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