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주욱 작가그의 작품에는 꽃이 화사하게 펴있다. 사람들에게 밝고 꽃이 피어나고 마음의 평화와 안정을 줄 수 있는 그림들을 전시하고 있어서이다.
알바노조
- 게으르게 산다고 하니, 하루 일과가 궁금해지네요.
"오전 10~11시에 일어나요. 눈을 떠서는 누워서 오늘 어떻게 보낼지를 생각하다가 사람들이 점심시간에 몰리기 전인 11시 반쯤 식당에서 밥을 먹고 나와요.
작업실(겸 집)이나 카페에서 차를 마시고 요즘처럼 전시가 있을 때는 전시장에 나와서 메일이나 메시지를 확인하고 답변도 달고, 주문 들어온 일도 하고요. 오후 5시쯤 되면 '뭘 먹지? 누굴 만나지?'라고 생각해요. 평소에 약속을 잡는 편이 아니고, 술마시는 자리를 좋아하지 않아서 생활이 늘 단조롭기는 해요.
저녁에 자전거를 타고 다니면서 앞으로의 계획을 구상하고, 12시쯤 작업실에 들어가 밀린 페이스북을 하고 영화를 보거나 친구들과 메시지를 주고받으면서 놀고요. 요즘 미생에 한참 빠져서 보고 있는데 감명을 받아서 영감을 찾기도 하고, 그러다가 4시쯤 자요."
- 직장인의 입장에서는 부러운 일상이에요."지금 7~8년 차가 되가니까 이런 삶에 익숙하지만, 1~2년 차에는 엄청 불안했어요. 그림을 그리는데 수입은 생기지 않아 조바심도 났고, 누가 부르면 뒤처질까봐 싫지만, 나가는 자리도 있었었죠. 지금이 저는 편해요. 개인적으로 욕심을 부린다고 해서 행복할까 싶기도 하고, 내 마음처럼 움직이지 않기도 하고요, 지금 상황을 즐기면서 열심히 살고 있어요."
- 세월호 관련 그림을 통해서 많이 알려지셨잖아요."지난해 4월 16일, 세월호가 침몰한 날인데 그날 전 전시회를 오픈했죠. 가톨릭 신자라면 명동성당 아래에 있는 전시관에서 개인전을 열고 싶어해요. 그날, 아침에 '배가 가라앉고 있다. 그런데 승객들을 구했다'는 뉴스를 보고 "안심이다"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일이 점점 커지더라고요.
전시가 2주였는데 많이 우울했어요. 우야무야 전시도 끝났고요. 5월 5일, 성당친구들과 모여 이야기를 나누다가 고발뉴스에서 나온 '진실은 침몰하지 않습니다'라는 문구로 그림을 그려 명동, 서울시청 등에서 1인 시위를 하자고 한 거죠.
그때 찍힌 사진들이 SNS을 타고 돌아다니게 되었고, 저도 디지털 데이터로 만들어서 배포하기 시작했어요. 인쇄해서 뿌리기도 하고, 가만히 있을 수 없어 마포구 일대에 벽보를 붙이기 시작했죠. 풀을 개서 자전거를 타고 다니면서 붙였어요. 그러면서 함께 활동하게 된 어머니들과 티셔츠도 만들고, 교황님 오실 때 영어로 만들기도 했고…. 이게 나에게 뭘까, 슬픔이고 아픔이고 힘든 일인데, 참으로 마음 아픈 일인데…. 나는 뒤에 있고, 그림으로만 지원해야겠다고 마음먹었죠."
- 이전에도 세상으로부터 소외받는 사람들의 다양한 현장에서 작업을 하셨던데요."첫 시작은 용산역 앞 남일당에서였죠. 용산참사가 난 후, 레아호프가 레아갤러리로 바뀌면서 작가들이 전시를 했어요.
제가 서울민족미술인협회 회원인데, 헤이리에서 만난 선생님께서 연락을 하셔서 만장도 쓰기도 했고, 전시회 및 추모도 진행했어요. 그때 생각하면 현장에서 뭔가 하는 게 참 무서웠죠. 하지만 사람들이 작품을 보러오게 레아갤러리에 오게 되고, 사람이 더 많이 오면 좋았던 것죠.
작업이 빠른 편이고, 직관적으로 그림을 그려서인지 현장에서 찾으시는 경우도 많아요. 2013년 11월에는 밀양 겨울 밭에서 희망버스를 맞이하면서 다양한 얼굴 그림을 그려 조형물을 만드는 작업도 했죠. 강정 평화컨퍼런스와 평화대회가 열리는 지난 9월에는 강정에서 아이들과 함께 평화십자가를 만들고, 사람들의 얼굴을 그리기도 했어요.
지난해 10월에는 세월호 대책위에서 청운동 농성장 천막이 아이들의 시신을 확인하는 천막과 같은 것이어서 유가족들이 힘들어한다고 해서 광화문 광장에서 시민들과 함께 걸개그림 그리기도 진행하기도 했고요."
- 화가로 산다는 것이 쉽지는 않은 일 같아요."처음에는 내가 살아야 그림을 그릴 수 있었으니 싫어도 돈을 벌어야 한다는 마음이 강했어요. 그런데 처음부터 그림을 그려서 돈을 번다는 힘들죠. 잘 안 벌리니까 들어오는 일을 다하고. 작업했는데 작업비를 안 주기도 하고요. '사회가 무섭구나', '눈 뜨고 코 베이는 것이 이런거구나'라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생존을 위한 작업을 하다보면 남는 것이 없는 거 같아요. 돈은 벌긴 하지만 만족을 느끼지는 못했죠. 반면, 그림을 그리고 "고맙습니다. 작가님"이라는 말을 진심으로 느꼈을 때 작가가 되어서 이런 말을 들을 수 있다는 사실이 행복해요. 작업의 동기이자 영감이기도 하고요. 그래서 지금은 사람을 위해 그림을 그리는 게 맞다고 생각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