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이의 유치원 졸업 당시의 사진입니다.
김옥숙
퇴근하고 집에 돌아온 나에게 3주차 언어치료를 다녀온 덕이가 저녁을 잘못 먹었다는 말을 어머니께서 말씀해 주셨다. 무슨 일일까 싶어서 덕이가 자고 있을 방으로 들어갔다. 덕이는 자고 있지 않았다.
고모 : "덕아, 어디 아프니?"덕 : "아니."고모 : "저녁 식사를 아주 조금 먹었다고 할머니께서 그러시던데 무슨 일 있는지 궁금한데?"덕: "괜찮아요."말은 괜찮다고 하지만 표정으로 봐서는 왠지 불편한 듯 보였으나 덕이는 괜찮다고만 한다. 나 또한 덕이의 대답을 기다리면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의 추측이나 선입견으로 앞질러 말하는 것을 자제했다.
덕이가 아직은 생각과 감정에 대한 의사 표현을 상황에 적절하게 하지 못하지만, 가능하면 덕이와 관련된 것은 덕이에게 직접 물어보기로 했다. 이는 덕이를 존중하는 태도이며, 가장 정확히 알 수 있는 지름길이라고 여겼다. 덕이를 진정으로 존중한다면 섣부른 내 생각으로 더하고 빼는 것 없이 있는 그대로의 덕이를 받아들일 때 덕이의 변화에 도움될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이런 다짐 덕분에 덕이와 대화하면서 내 자신에게 길들이고 있는 긍정적 특성 하나는 '오래 참음'이다. 사실 나는 무슨 일이든 그리 오래 참는 성격은 아니었다. 속전속결을 좋아하는 습관이 있었다. 그러나 덕이와 대화하면서부터는 '오래 참음'을 훈련하게 됐다. 어려운 도전이었다.
처음에는 덕이에게 질문을 하고 빨리 대답하지 않으면 나는 다그치거나 내 생각과 내 추측으로 마무리하려고 했던 적도 여러 번 있었으나 그것은 덕이와 내 관계에 전혀 도움이 되지 못했다. 덕이의 발전도 돕지 못했다.
그날 밤에도 일단 덕이를 재우고 덕이를 언어 치료에 데리고 다니는 친구에게 전화를 해봤다. 친구가 하는 말. "덕이가 전철을 타거나 버스, 또는 택시를 타면 바로 잠든다"는 것이었다. 친구의 말을 듣고 곰곰이 생각해 보니 평소 내 차를 탔을 때도 덕이는 자주 잠들었다. 내 딴에는 재밌다고 생각해 동요나 동화를 차 안에서 들려줘도 덕이는 잠을 잤다.
다른 아이들 하물며 다른 조카조차도 버스, 지하철, 택시, 자가용을 탄다고 해서 그리 쉽게 잠들지 않는다는 것을 떠올리고 '아, 뭔가 덕이에게는 다른 아이들과 다른 점이 있구나' 싶었다. 다음 날 전화로 서울대 소아 정신과 담당 의사 선생님께 여쭤보니 그것도 일종의 차 멀미와 같다고 알려주셨다. 정확히 알게 되니까 안심이 됐다. 의사 선생님 말씀을 친구에게 그대로 전달했다.
그러나 그 다음 주에도 언어 치료를 다녀온 덕이가 기운이 없어 보여 씻긴 후 재웠다고 어머니께서 말씀하셨다. 이상한 일이었다. 뭐가 문제란 말인가? 나는 또 친구에게 전화할 수밖에 없었다. 친구가 하는 말은 "덕이가 나를 어려워하는 것 같다"는 것이었다. 그럴 수 있었다. 그는 나와 각별한 친구고, 덕이를 어려서부터 몇 번 만난 적 있지만, 친구와 덕이 단 둘이서 언어 치료 50분과 오고 가는 90분씩 약 4시간을 함께 하는 것이 덕이로서는 어려울 수 있었을 것이다.
덕이와 소통... "말하기가 어려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