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석헌과 김교신 등
함석헌기념사업회
오는 3월 13일은 한국인 최초 노벨평화상 후보자인 함석헌(1901-1989)이 태어난 지 114주년이 된다. 함석헌은 누구일까? 그를 '기독교사상가', '민주화운동가', '독립운동가', '역사가', '언론인' 등으로 보는 이들이 있다. 반면, 김종필은 그를 '정신분열증에 걸린 노인네'로 보았고, '패배주의자'나 '독설가'로 보는 이들도 있다. 물론 민주사회에서 한 인물에 대한 평가는 각자가 자유롭게 할 수 있다.
역사와 사물을 보는 입장은 최소한 두 가지 시각이 있다고 믿는다. 하나는 권력자 입장에서 보는 시각이고, 또 다른 하나는 씨알(민초) 입장에서 보는 시각이다. 내가 아는 함석헌은 역사와 사물을 권력자가 아닌 씨알 입장에서 보았다. 그리고 씨알의 입장에서 가해자와 권력자에 맞서서 온 삶으로 저항했다. 그래서 일제강점기는 물론 그 후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정권시기에 함석헌과 그 가족은 고난에 찬 삶을 살 수 밖에 없었다.
지난해 '문창극 파동'이 있었을 때, 문창극씨의 역사관과 친일발언이 함석헌의 고난사관과 별반 다르지 않다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었다. 평소 나는 <동아일보>를 잘 보지 않는다. 그런데 지난해 6월 23일자 <동아일보> '[송평인 칼럼] 함석헌을 문창극처럼 편집하면'이라는 글이 눈에 띄었다.
이 칼럼에서 송씨는 "문창극 총리 후보자에 대해 저질러진 것"은 '악마의 편집' 때문이라며 문씨의 친일발언과 역사관을 언론(KBS 노조)의 잘못된 편집 탓으로 돌리고 문씨를 적극 변호했다.
송씨의 칼럼을 읽고 든 생각은 "과연 단지 '악마의 편집' 때문에 문씨의 본심이 국민에게 잘못 전달된 것일까?"라는 것이다. 물론 나는 이런 송평인씨의 시각에 전혀 동의하지 않는다. 그 예로 민중(씨알)에 대한 문창극과 함석헌의 관점을 한번 비교해 보자.
"언론이 지배 계급의 이데올로기를 대변하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이를 비판하는 언론학자들이 이상한 것입니다. 민주주의가 작동이 제대로 되지 않고 있는 이유는 대다수의 민중이 무지하기 때문입니다. 대중은 우매하고 선동, 조작되기 쉬우므로 엘리트들이 여론을 이끌어야 합니다." - 문창극 전 <중앙일보> 주필의 2013년 고려대 강의 중 "씨알 여러분, 아무리 괴로워도 낙심하지 마십시오. 아무리 그럴 듯하게 말해도 속지 마십시오. 벼슬아치들은 말할 것도 없고 이젠 신문도 못 믿습니다. 신문이 우리 사정 알아주지 않습니다. 그들이 씨알 편에 섰을 때 혹독한 일본 제국주의의 칼을 가지고도 그들을 꺾을 수 없었습니다마는, 그들은 이제 돈에 팔려 씨알을 저버렸습니다. 그런 다음에는 약할 수밖에 없습니다. 고금(古今)에 씨알을 저버리고 강했던 놈은 하나도 없습니다. 이제 우리가 믿을 것은 우리들 자신밖에 없습니다." - 함석헌 <씨알의 소리> 1971년 8월호 중 '악마의 편집' 때문이 아니라 문창극씨는 분명하게 한국 민중을 무지, 우매하다고 평가했다. 그래서 한국 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것도 잘못된 정치인 때문이 아니라 민중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문씨는 언론인은 당연히 지배계급의 이데올로기를 대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즉, 문씨는 뚜렷하게 권력자의 입장을 대변하고 있다. 이런 문씨를 국민과의 소통을 별로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박 대통령이 총리후보자로 추천한 것은 어쩌면 지극히 자연스런 일이라고 할 수 있다.
반면, 함석헌은 "돈에 팔려 씨알을 저버린 언론인"을 비판하고 있다. 그러면서 이제 믿을 것은 권력자가 아닌 우리들 자신인 "씨알 밖에 없다"며 자신을 씨알과 동일시하며 그 씨알을 위로하고 있다. 그러니 유신독재시절 박정희가 눈에 가시 같은 함석헌이 만든 잡지 <씨알의 소리>를 폐간시키려고 한 것도 전혀 놀랄 일은 아니다.
그런데도 송평인 논설위원은 이렇게 역사, 언론, 씨알에 대하여 전혀 상반된 관점을 갖고 아주 다른 삶을 살아온 함석헌, 문창극 두 인물에 대해 단지 '악마의 편집' 때문에 문씨가 마치 억울하게 피해를 당한 것처럼 그의 칼럼에서 묘사하고 있다.
함석헌 탄생 114주년을 맞아 함석헌의 '절친' 김교신(1901-1945)의 눈을 통해 함석헌을 되돌아보는 일은 그래서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부패하고 불의한 권력자가 정권을 잡고 있고 그 권력자에 아부하는 언론인들이 넘쳐나는 오늘 한국에서 함석헌을 되돌아보는 일은 오늘 우리가 서있는 자리와 지향해야 할 바를 성찰하는데도 꼭 필요한 일이라고 확신하기 때문이다.
세상에 묻힐 뻔한 함석헌의 <뜻으로 본 한국역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