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산병을 정신력으로 극복하며 순례자의 심정으로 걷고 있는 K의 모습
정수현
많은 사람들이 머릿속에 떠오릅니다. 살아오면서 감사했던 사람들, 척을 지었던 사람들, 지금은 어떻게 살고 있을까 궁금한 내 기억의 한 부분을 공유했던 사람들까지... 일부러 의식하지도 않았는데 내 안에서 '미안합니다, 용서하세요,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라는 말이 터져 나옵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의 얼굴과 그 메시지가 교차 되면서 마음에 남아 있던 묵은 먼지들을 털어 내었습니다.
K는 저 멀리서 걸어옵니다. 고통을 참으며 한 걸음 한 걸음 내딛는 것이 거의 '오체투지', '삼보일배'와 다름없어 보입니다. 워낙 걸음이 느리기에 보조를 맞춰주는 것은 서로에게 더 힘든 일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나와 포터는 정상적인 속도로 먼저 갔습니다. 온통 하얀 세상, 절대 고독의 시간은 K에게 진짜 자신을 만나는 '순례길'을 열어 주었습니다.
'70대 노인도 갔다 오는 길인데 왜 나는 이렇게 힘들어야 하는가.'처음에는 자기 자신에 대한 자책과 원망이 올라오다가, 어느 순간 그래도 40년 넘게 버티며 살아준 몸에 대한 감사함이 일어났습니다. '그동안 고생했다'라는 말이 눈물과 함께 나오더랍니다. 그리고는 '몸이 아프다고 왜 마음까지 아파야 하나'라는 생각과 함께 정신차리자는 말을 10번이나 속으로 외쳤답니다. 그 순간 몸에 매여 괴로웠던 마음이 자유로워지면서 오직 심장 박동과 호흡만이 느껴졌고, 걸음걸이 하나하나에 모든 것을 집중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누군가에게는 시작, 누군가에게는 끝인 베이스캠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