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보카 종합매장은 1723년부터 시작되었다.
김현지
아보카의 시작은 18세기 위클로 지역(County Wicklow)의 작은 아보카 마을(Village Avoca) 직물 공장에서 시작됐다. 그 당시에는 농부들이 양을 직접 기른 후 털을 깎고 그 털로 실을 짜고 옷감을 짜는 식으로 하는 가내 수공업이 대부분이었다.
그때의 직물들은 주로 트위드(간간이 다른 색깔의 올이 섞여 있는 두꺼운 모직 천)나 담요를 만드는 데 사용됐고, 대부분 양털의 천연색을 그대로 사용했다. 직물 사업은 조금씩 발전을 거듭했다.
초기 아보카를 운영하던 위니스가(Wynnes Family) 자매들은 단순한 양모의 천연 색상에서 벗어나 자연에서 추출한 강렬한 색상들(빨강, 초록, 노란색)을 적용해 직물 산업에 획기적인 변화를 시도한다.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이후 파리의 디자이너를 포함한 영국의 조지 6세(King George VI), 엘리자베스 여왕 2세(Queen Elizabeth II)의 자녀에까지 애용되면서 유명세도 함께 치르게 됐다.
아보카에 위기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1970년대 당시, 직물 제조업은 사양길을 걸었고 아보카도 예외는 아니었다. 하지만 도날드 & 힐러리 프래트 부부(Donald & Hilary Pratt)는 주변의 반대를 무릅쓰고 회사를 인수한다. 그들은 수직 제조 공법 러그와 담요(handwoven lug and throws)를 도입해 영국을 비롯한 각 나라에 수출하기 시작한다.
그들의 끊임없는 노력은 죽어가던 아보카를 지금의 아보카 회사로 성장시켰다. 수직 공법으로 만든 담요는 아보카의 대표적인 상품으로 지금도 꾸준히 사랑받고 있다. 전통을 계승하려는 그들의 노력이 없었다면 아보카는 '한때 유명했던 회사'로 남았을 것이다. 물론 아이리시들은 현재의 아보카 상품을 만나지 못했을 테고.
프래트 부부의 끊임없는 노력과 희생 덕분에 아보카는 아일랜드에서 가장 오래된 직물 회사로서의 명성을 지속할 수 있었다. 투철한 장인 정신으로 단단하게 계승돼 온 가족 사업이 아보카를 영향력 있는 브랜드로 성장시켰다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