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더폰과 스마트폰왼쪽이 지금 사용하는 폴더폰. 카톡 등 일부 스마트한 기능이 있다. 직전에 사용하던 스마트폰(오른쪽)과 비교할 때 화면 크기가 현저히 작다. 손에 쥐고 보기도 어렵다. 그런 이유로, 사용 석달째 "대만족"
박보경
지난 가을 나는 괴물과도 같은 스마트폰으로부터 벗어나기로 결심했다. 2년 약정이 끝나는 12월에 폴더폰으로 기기를 변경하기로 말이다. 점점 더 스마트하게 진화하는 전화기를 걷어차고 나는 예전의 통화와 문자만 주고받던 그 시절로 돌아가기로 했다. 결국 나는 석 달 전 전화기를 바꿨다.
내가 스마트폰으로부터 해방되니 아이들과 함께 하는 장난 혹은 놀이가 많아졌다. 대화가 더 많아진 것은 두 말할 필요도 없다. 더불어 책을 많이 읽게 됐다. 출·퇴근하는 2시간 가량 나는 책을 읽는다. 매월 3만 원 가까이 하던 스마트폰 기기값을 절약하게 된 것과 비싼 요금제를 아낄 수 있게 된 것은 생각지도 못한 경제적 이득이다.
다시 지난 토요일 식당. 시끄럽던 소리에 주위를 둘러봤고 모든 아이들 손에는 스마트폰이 들려 있음을 확인했다. 내 앞에 앉은 두 아이는 전화기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게 됐다. 석 달 동안 아빠가 전화기를 전화기로 대하니 아이들 역시 그러했다. 이제 나는 누군가 돈을 준다며 스마트폰을 사용하라고 해도 사용할 생각이 전혀 없다.
[그 여자 이야기] 아이에게 '키즈폰' 대신 '가족 책상'을 선물하니초등학교에 입학한 큰 아이는 며칠 전부터 선물로 '키즈폰'을 사주면 안 되냐고 몇 번이고 물었다. 같은 유치원에 다니는 몇몇 친구들은 초등학교 입학 선물로 키즈폰을 받았다는 것이다. 다른 엄마들은 사주는데 왜 엄마는 사주지 않느냐고 제법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물어보길래 엄마마다 생각이 다른 거라고 대답해 주었다. 그 뒤로도 아쉬운 듯 "엄마마다 생각이 다른 거죠?"라고 여러 번 확인했다.
사실 내가 아이의 초등학교 입학 선물로 준비한 것은 책상이었다. 크고 튼튼한 책상. 우리 집 거실에 놓을 수 있는 책상을 마련하고 싶었다. 우리 집 거실에는 텔레비전이 없다. 그 자리에는 신혼 때부터 끌고 다닌 책들이 차지하고 있다. 즉, 거실이 서재인 것이다. 그 중에 하나씩 골라 들고 아이들과 모여 앉아 책을 볼 수 있는 책상을 아이에게 선물하고 싶었다.
초등학교를 입학하는 아이를 보면서 가만히 생각해 보았다. 우리 아이가 소위 명문대학교에 진학할 확률은 얼마나 될까? 혹시라도 운이 좋아 명문대에 입학한 들, 그로 인해 행복하게 살 확률은 또 얼마나 될까? 그 불확실한 확률을 위해서 아이가 느껴야 할 오늘의 행복을 뺏을 권리가 부모에게 있을까? 곰곰이 생각해 보았지만 답이 나오지 않았다.
그래서 아이에게 '오늘의 행복'을 선물하고 싶었다. 그게 내가 해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이라고 생각하며 책상을 찾아 나섰다. 남편과 을지로 가구 거리를 헤매고 다닌 게 몇 번이었지만, 마음에 쏙 드는 책상을 만날 수가 없었다. 덕분에 근처에 위치한 맛있는 냉면집을 찾아냈지만 애당초 목적은 그게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