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열 인천예총 회장
김영숙
1947년 경북 의성에서 태어난 김 회장은, 초등학교 4학년 때 방학숙제로 제출한 고양이 그림이 뽑혀 교실 뒤편에 걸렸던 옛이야기를 들려줬다.
"열 개 정도 붙어있던 것 같은데, 제 그림에만 누런 금박지 위에 '우작'이란 글자가 쓰여 있더라고요. 선생님도 관심을 가져주시니까, 제가 그림을 잘 그리나보다, 하고 생각했죠."그때부터 그림에 취미를 붙인 김 회장은 수박을 그리던 기억, 야외에 나가 그림 그리던 기억 등을 갖고 있다. 중학교에 올라가서는 미화부장을 맡기도 해, 반 게시판을 주도적으로 꾸미기도 했다.
방직산업이 발달했던 대구로 유학을 가 대구공업고등학교 방직과에 진학했다. 그림에 소질 있던 김 회장을 선배들이 스카우트해 미술반 활동을 했다. 그러나 대학 진학을 앞두고 고민이 많았다.
미술을 계속 하고 싶었지만 어려운 경제사정으로 취직을 염두에 둬야 했다. 그러다 홍익대 건축미술과에 입학했다. 그림과 건축의 결합은 또 다른 시작이었다. 1971년 중위로 전역한 김 회장은 1966년 인천 남동구에 설립된 (주)보루네오가구에 취직해 인천과 연을 시작됐다.
"당시는 남동구가 허허벌판이었죠. 설립된 지 얼마 안 된 회사라 영세했지만 가구 인테리어도 재밌을 거 같고 산업디자이너로 개척해보고 싶다는 의지도 있어 입사했어요."
열정을 바친 김 회장은 남들보다 진급이 빨랐다. 그러나 책임감과 보람이 커질수록 한편에선 그림에 대한 그리움도 커져갔다. 평일에는 회사 일에 최선을 다했지만 주말에는 영종도·소래포구·자유공원 등지를 다니며 수채화를 그렸다. 그때 그림이 아직도 몇 점 남았는데, 그에겐 그때 감정이 고스란히 녹아있는 보석 같은 작품들이다.
회사는 점차 번창했다. 가구 디자인과 광고뿐 아니라 증축하는 공장의 건설본부장을 맡기도 한 팔방미인 김 회장은 마흔한 살에 최연소 임원이 됐다. 해외시장 개척과 해외기술을 익히러 창업주와 해외출장도 자주 갔다. 그러나 손에서 붓을 놓지 않았다. 주경야독이었던 셈이다.
"밤에 집에 들어와 피곤하지만 열심히 그림을 그렸어요. 그러다 1989년 인천시 미술대전에서 특전하고, 1991년에는 서양화 부문에서 대상을 받았습니다. 지금 생각해도 참 잘했다고 대견하게 생각해요. 만약 건축미술로만 남았다면 지금의 내가 있을 수 없을 겁니다."대학원에서 실내디자인을 공부한 김 회장은 회사 임원으로 있던 1989년에는 모교인 홍익대 목조형가구학과에서 강의하기 시작해 2000년대 초엔 산업미술대 전임교수로 일하기도 했다. 후배들에게 학문적 접근보다 산학 협동차원에서 산업화에 대한 고민을 던져주기도 했다. 여러 가지 일을 동시다발로 하느라 쉽지 않았지만 즐거웠던 시절이었다.
롤모델이자 벗인 우에노 히로시김 회장은 1986년 (주)보르네오가구에서 개발담당 이사로 있을 때 일본 야마하 가구사업부 공장장인 우에노 히로시를 만났다.
아직 일본어에 익숙하지 않아 부족한 소통을 그림으로 대신했다. 우에노 히로시는 깜짝 놀랐다. 평소에 그림에 관심이 많았던 우에노 히로시와 김 회장은 서로 통했다. 둘은 2인 전시회를 약속했고, 2001년 그 약속을 지켰다. 일본에서 먼저 전시한 후 우리나라에서도 전시회를 열었다.
김 회장보다 다섯 살 많은 우에노 히로시는 그에게 롤모델이자 멘토였다. 우에노 히로시는 50대 후반에 미술공부를 본격적으로 하러 영국 유학을 떠났다. 화우이자 경쟁자인 그들은 멋있는 관계로 지금도 교류하고 있다.
드라마 <겨울연가>가 일본에서 인기절정을 누리고 있던 2004년에는 그들과 한국 작가 다섯 명이 힘을 합쳐 남이섬·외도·춘천 등 <겨울연가> 촬영지를 그림으로 그려 일본에서 책으로 출간하기도 했다.
우에노 히로시와 전시회를 하기 2년 전인 1999년에 첫 개인전을 연 김 회장은 지금까지 개인전 15회를 열었다.
"다양한 아이템으로 전시회를 했지만 기억에 남는 것은 2007년에 구월동 신세계백화점에서 연 '근대풍경전'입니다. 사라져가는 인천 건축물이 안타깝고 누군가는 해야 하는 일이라는 생각으로 복원해 그림으로 그렸죠."그때 작품 몇 점은 이듬해 인천시 자매도시인 일본 기타큐슈에서 열린 자매도시 20년 특별 교류전에 전시되기도 했다. 근대건축물 작업은 그에게 큰 의미로 다가왔다. 개항장이나 근대문물을 사진자료를 보고 상상해 당시의 색감을 오늘에 되살려냈다. 작년에는 인천아시아경기대회를 기념해 '개항장 인천의 풍광전'을 열기도 했다.
미술인에서 예술인으로, 인천예총 회장되다